[먼데이 머니] 돈 굴리기 : (오세훈의 재테크법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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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판의 한계 ] 다음에 드는 예화는 가장 간단한 형태의 송사를 다소 희화화한 것이다. 그러나 재판제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어느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던 아주머니 두 분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다. 순자 어머니는 여유가 있어 동네의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가끔 돈을 꾸어 주기도 하는 인심 좋은 양반이었다. 그는 2년전 영철 어머니에게 3백만원을 꿔 주었다. 영철 어머니는 약 1년 후 1백50만원을 갚았다. 또 몇 달 후 나머지 돈 1백50만원을 주려고 하니 순자 어머니가 지난번 받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다른 돈 거래와 혼동을 한 모양이다. 두 사람 다 돈을 주고받을 때 영수증 한 장도 남기지 않았다. 옆에서 본 사람도 없어서 도저히 판가름이 나지 않았다. 당연히 양쪽 모두 감정이 상했다. 영철 어머니가 1백50만원을 떼어먹으려 한다고 오해한 순자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에게 하소연했다. 주변에서는 소송을 하기 전에 내용증명이라도 하나 보내는 것이 순서라고 했다. 그래서 나머지 1백50만원을 즉시 갚지 않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는 내용의 글이 영철 어머니에게 날아들게 되었다. 영철네도 가만있으면 순자 어머니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아 답장을 하기로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래서 3백만원 중에 1백50만원을 분명히 x월 x일에 갚았다. 이번에 나머지도 다 갚았으니 더 이상 갚을 빚이 없다. 양심을 회복하라. 이렇게 써서 보냈다. 답신을 받은 순자 어머니는 분기충천하여 법원에 소장을 냈다. 재판이 시작됐다. 판사는 영철 어머니에게 "아주머니 3백만원 꾼 사실이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는 "전 억울해요. 판사님,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제가 얼마나 양심적인지..." "이 양반 안되겠네. 원고에게 묻겠습니다. 3백만원 꾸어 준 증거 있어요" "영수증을 안 받아서... 아참, 있어요. 저 여자가 답신을 보내왔는데, 거기에 자기가 빌려갔다고 써 있어요. 갚지도 않고 갚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요? 어디 봅시다. 그렇네요. 자, 그러면 이제는 피고가 1백50만원을 이미 갚았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세요" 영철 어머니는 갑자기 멍해졌다. 무슨 수로 증명을 하나? "제가 보낸 답신에 써 있는데요" "그게 무슨 증거가 됩니까. 영수증을 내놓거나 돈 갚는 걸 본 사람이 있으면 증인 신청하세요" "없는데요. 전 정말 억울해요. 저는 이날 이때까지 누구에게 못할 짓 한 적도 없고..." 판사 역시 답답했다. 표정을 보면 억울한 것 같기도 한데 방법이 없다. 법에는 원고가 꾸어준 사실을 일단 입증하면 그것으로 일단락된다. 그 다음 갚았다는 사실을 피고가 입증하지 못하는 한 피고가 지게 된다고 정해져 있다. 모든 재판에는 이런 종류의 갖가지 원칙이 정해져 있다. 그것을 잘 이용해 상대방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 중요한 재판기술인 것이다. "어쩔 수 없네요. 판결 선고합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나머지 1백50만원을 갚으세요" 법 없이도 살 사람 이라는 표현이 있다. 이 말은 법하고 멀리 할수록 좋은 사람이라는 뉘앙스도 담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은 절대 그렇지 않다. 법이 항상 옳은 자의 편에, 정의의 편에 서는 것은 아니다. 법은 이를 무시하고 멀리 하는 자보다 알고 이용하는 자의 편에 설 때가 더 많다. 법은 해결책이 없어 보일 때 적용되는 하나의 기준일 뿐이다. 그 불완전한 것을 적용하는 판사 역시 불완전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