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무모한 햇볕정책 경계해야 .. 정창인 <안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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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서해에서 도발을 계속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남북 차관급 회담을 성사시켜 큰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축하고 있는 이때에 말이다. 남북한의 시각차가 크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급하고 답답한 쪽이 북한일 것같은데 오히려 한국정부가 안달이다. 북한의 약점이어야 할 공산독재정권이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고 한국정부의 장점이어야 할 자유민주 정부가 약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북한정권은 줄곧 한가지 정책을 꾸준히 추구하는데 반해 한국정부는 정권마다 정책을 바꾸기 때문이다. 이번 서해에서의 북한의 도발과 김대중 정부의 대응을 보면 역대 정부가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 하고 있다. 북한은 현상 타파라는 전략적 목적 달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반면 한국은 현상 유지를 위해 북한에 유화적 몸짓만 하고 있다. 북한이 서해를 침범하여 무력 시위를 하는데도 한국은 마치 북한의 침범행위가 없었던 것처럼 무마하려 하고 있다. "충돌식 밀어내기 작전"이란 웃지 못할 희극이 서해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한국정부의 햇볕 정책에 대한 미련 때문이다. 겨우 차관급 회담을 성사시켜 마치 남북관계의 개선에 큰 진전이라도 있었던것처럼 자축하려는 판에 북한이 흥을 깨려고 움직이자 마치 강도 짓을 하기 위해 담을 넘은 강도에게 내가 못본척 할테니 그냥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회유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역사적 경험이 한국의 그러한 희망적 낙관을 뒷받침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남북한 사이에는 남북조절위원회와 남북고위급회담 등 수많은 회담을가졌고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같은 합의문서도 작성했지만 아직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까닭은 한국정부는 정권적 차원에서 남북관계를 이용하려 했고 북한은 그 당시의 상황타개를 위해 대화에 응하기는 했으나 대화 상대로 한국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합의를 파기했던 것이다. 북한 경비정의 이번 서해 침범은 미국과 직접 협상하고 한국을 배제하겠다는북한의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한국정부가 남북 차관급 회담을 시작으로 차츰 회담의 위상을 높여 궁극적으로 남북정상회담으로 몰고 가려는 계획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가 이번 도발에 숨어 있다고 본다. 북한은 관민분리 정책에 따라 경제지원을 민간단체의 지원으로 한정하고 있다. 남북한 문제의 해결에 실질적으로 한국정부를 배제하겠다는 전략을 고수하고있는 것이다. 북한의 이런 뻔한 전략을 한국정부는 매번 모르는 척 수용하고 있다. 한.미공조관계 때문에 북한이 일시적으로 어쩔 수 없이 한국정부와의 공식적협상을 수락하게 되더라도 그러한 공식 관계를 파기하기 위해 그때마다 도발을 하였다. 이번 서해의 도발도 남북 차관급 회담을 불과 2주 정도 앞둔 시점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이 장성급 회담을 수락하자 대화로 문제를 풀 수 있다고 보고 안도하는 모습이지만 장성급 회담 자체가 남북한간의 비정상적인 대화 통로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국이 정전회담 대표를 한국 장성으로 임명하려 하자 북한이 정전회담 자체를 거부하고 임시 대화 창구로 장성급 회담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94년의 "불바다"나 96년의 "백배 천배 보복"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마구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국정부의 미온적 정책 때문이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는 이스라엘로부터 배워야 한다. 상대방의 위협이나 공격에 대해 즉각 대응조치를 취한다는 정책이 결국 평화를 가져온 것이다. 이번 도발의 목적이 "꽃게잡이냐, 북방한계선 무력화냐, 또는 협상용이냐"라고 추측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 목적이 악의가 아니라 선의라는 것은 북한이 증명해야 한다. 우리는 영토 침범 여부만 따져야 한다. 적이 경계선을 분명히 넘어 왔는데(월선), 그것이 침범 행위냐 아니냐는 북한의 목적을 따져 봐야한다는 식의 발상은 북한의 상황 인식만 그르치게 만든다. 국경선을 허가 없이 넘어 온 적은 자동적으로 즉각 격퇴되어야 한다. 햇볕 정책이 한국군의 대응 태세까지 녹여서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없다. 햇볕이 아무리 강해도 옷을 벗고 안벗고는 본인이 결정할 문제다. 북한이 스스로 변해서 한국의 협조를 간구할 때까지 일관성 있게 압박 정책을 고수하는 것만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안일 것이다.----------------------------------------------------------------------- [ 필자 약력 ] 육사,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행정학 석사 영국 뉴캐슬대 정치철학 박사 육사 경제학과 교수 역임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