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6일자) 도발불용이 햇볕정책의 전제

열흘 가까이 긴장이 고조되던 서해상에서 마침내 교전사태가 벌어졌다.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는 북한 경비정이, 이를 저지하는 우리 함정에 먼저 발포하자 우리측이 응사함으로써 양측 모두 함정과 인명에 손상을 입었다. 진작부터 우려하던 최악의 사태로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북한의 선제공격에 대한 우리 해군의 단호한 대응은 지극히 적절했다. 의도적인 도발로부터 영토와 주권을 지키는 일에는 한 치의 빈 틈도 없어야 한다. 북방한계선은 지난 53년 휴전협정과 함께 유엔이 북측에 통보한 것으로 그동안 북한은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휴전체제상의 군사분계선으로 확정된 경계선이나 마찬가지다. 지난 92년 남북한 총리회담에서 결실을 본 남북 기본합의서에서도 양측은 상대방의 실질적 관할구역을 인정키로 했기 때문에 이를 넘어서는 것은 명백한 영해침범이다. 만약 북한이 이의를 제기하려 한다면 공식적인 통로를 거치는 것이 상식이고또 국제관례다. 이번 일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해온 햇볕정책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교전이 벌어지는 순간 정부와 국민들이 정성을 담아 무료로 제공하는 비료가북한항에서 하역 중이었고 또다른 배는 비료를 싣고 북으로 항해하고 있었다.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객을 실은 유람선이 북한을 오가고 있고 그 대가로 우리는 6년간 9억4천만달러를 저들에게 지불한다. 삼성그룹 임직원들은 남북협력사업을 위해 방북 중이며 북한 경수로의 엄청난 건설비용은 대부분 우리가 부담한다. 그 현장에는 우리 근로자들이 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전이 벌어졌으니 햇볕정책에 국민들이 혼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언제까지 북한의 도발을 용인할 것이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햇볕정책이 남북간 긴장완화를 위한 유일한 대안이라고 본다. 비록 그 결실을 거두기까지 험난한 앞길이 놓여있다 하더라도 과거의 대결정책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햇볕의 목표가 북한으로부터 무엇을 얻어내려는 것이 아니고 북한사회의 개방과 변화를 유도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햇볕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당근을 더 주어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며 유사시 격퇴할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무력도발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이 햇볕정책의 기본 전제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힘의 뒷받침이 없는 유화정책은 성공한 사례가 없다. 오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남북 차관급 회담에서는 남북한 이산가족문제를 논의하는데 그치지 말고 북한의 도발을 엄중하게 추궁하는 한편 재발방지책도 협의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