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0일자) 재벌 금융장악은 오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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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5대그룹의 제2금융권 장악을 막겠다고 나선 것은 지나친 걱정이 아닌가 한다. 대기업그룹의 개혁을 다그치고 금융편중 현상을 시정하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정작 제기된 문제의식이 핵심을 벗어났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2금융권의 5대그룹 비중확대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므로 경영지배구조를 바꾸거나 금융감독을 강화한다고 풀릴 문제가 아니며 자칫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우리생각이다. 제2금융권에서 5대그룹의 비중이 최근들어 부쩍 커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3월말 현재 제2금융권의 수신비중은 42.6%로 97년말의 31%보다 크게 늘어났으며 이렇게 비대해진 제2금융권에서 5대그룹의 비중은 자산기준으로 34.7%에 달하고 있다. 특히 다른 업종보다 상대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투신업에서는 지난 5월말 현재 투신수탁고가 77조원으로 전체 투신업의 31%이고 수익증권 및 뮤추얼펀드 판매가 1백조원으로 40%에 각각 이르고 있다. 하지만 5대그룹의 자금독식은 시장수급 원리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며금융장악이라는 시각자체가 잘못됐다고 본다. 지난해에 은행들이 BIS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기 위해 대출을 크게 줄인데다가 저금리현상으로 돈이 증시로 몰리는 바람에 제2금융권의 비중이 커진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이러니 부채비율을 2백% 미만으로 낮춰야 하는 대기업들은 필요한 자금조달을 제2금융권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IMF사태로 이른바 "은행불패"의 신화가 깨지면서 그중 믿을 수 있는 5대그룹 계열 금융기관들로 돈이 쏠린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도 이런 환경변화는 외면한채 제2금융권에도 이사의 50% 이상을 사외이사로 충원하고 소수주주권 행사요건을 완화하며 감사위원회를 설치토록 입법화하는 방안이 대책으로 제시되는 것은 초점이 맞지 않는다고 본다.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도 금융의 중심이 간접금융에서 직접금융으로 바뀌는 세계조류에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계열사에 대한 편법지원을 막고 투명경영을 보장하기 위해 금융감독 강화는 물론 필요하지만 계열사에 대한 여신한도를 더욱 낮추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5대그룹 계열사나 돼야 그나마 믿고 거래할 수 있는 마당에 이들에 대한 여신한도 추가제한은 자칫 신용경색만 초래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또다른 규제로 변질되기 쉽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은행권에 대해 지나치게 규제한 결과 제2금융권이 비대해졌고 국내은행들의 경쟁력만 약해져 외환위기를 불러온 원인의 하나가 됐다는 점을 금융감독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