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시대 역행하는 소유한도제한

"총 33개의 제2금융기관을 소유하고 있는 5대그룹이 제2금융기관 자금을 편법으로 계열사를 위해 사용할 개연성이 있다" 이기호 청와대경제수석의 말이다. 정부가 대기업의 제2금융권 지배에 칼을 빼들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한 설명이다. 옳은 지적이다. IMF(국제통화기금)체제 이후 5대그룹의 금융지배력은 엄청나게 강화됐다. 증권사 손해보험사 신용카드사의 경우 5대그룹 계열사의 시장점유율이 50%를넘고 있다. 최근 날개돋친듯 팔리고 있는 수익증권도 3분의1은 5대그룹 투신사와 투신운용사의 몫이다. 따라서 정부가 5대그룹의 제2금융권지배에 쐐기를 박고 나선 것은 백번 잘한일이다. 문제는 그 방법이다. 금융감독위원회에서 마련중인 방안엔 경영지배구조 및 소유구조개편, 계열사및 다른 회사에 대한 투자한도 축소, 공시강화 및 과장광고 금지 등이 망라돼있다. 문제가 되는건 소유한도 제한과 투자한도 축소다. 5대그룹의 투신사 지분한도는 지난해 규제완화 차원에서 철폐됐다. 그 결과 5대그룹은 모두 투신사와 투신운용사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해 거래하는 금융기관이 하루아침에 폐쇄되는 경험을 했던 고객들은 5대 그룹이란 "간판"을 믿고 이들 회사에 돈을 맡겼다. "5대 그룹은 망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작용한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소유지분한도를 설정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느낌이다. 작게는 고객들에 대한 우롱이고 크게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행위다. 투자한도 축소도 마찬가지다. 대형펀드의 경우 현재 계열사주식을 10%까지만 살 수 있다. 이를 축소해 펀드가 계열사를 지원하는 행위를 차단하겠다는게 정부의 구상이다. 그러나 이도 말이 되지 않는다. 저금리라는 상황을 감안하면 한동안은 대형펀드에 돈이 몰릴게 뻔하다. 펀드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되면 투자한도를 축소해도 별무소득이다. 다시한번 투자한도를 줄여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틈만 나면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금융감독정책을펼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그의 발언은 상당부분 실현되고 있다. 시장 참가자들로부터도 호평을 얻고 있다. 그러나 금감위가 만일 소유제한이나 투자한도 축소라는 손쉬운 "규제"를 선택한다면 이는 분명 이 위원장의 소신과는 역행하는 일이다. 그보다는 금융감독원이 감독기술을 고도화해 대형펀드의 자금이 계열사 지원에 사용되는 행위를 엄중 "감독"하는 게 시장원리에 합당한 방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