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비상구로 뛰어선 안된다 .. 박영균 <경제부장>

"미리 경고를 하는건 좋지만 언론이 너무 겁을 주는 것 아닙니까" "투자신탁회사에 맡겨둔 돈은 괜찮겠지요" 이런 문의 전화가 쇄도한 지난주 금요일. 뭐라 대답을 해야할지 곤혹스러웠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잘 모르겠다. 누구도 알수 없다"는 것이고, 애매하고도 비겁한 표현을 빌리자면 "아직은 괜찮다"고 말할수 밖에 없다. 이럴때면 "주가는 원래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는 불문율이라도 있었으면 싶다. 자연과학에선 그런 원리가 있지 않은가. 양자역학을 다루는 미시의 세계에선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는 명제가 있다. 이른바 "불확정성의 원리"다. 2차대전 이후 최초의 원자로를 설계한 하이젠베르크라는 물리학자가 주장한 것이다. 양자와 전자의 세계에선 위치와 속도등을 정확히 측정하는게 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원리이다. 예컨대 전자의 위치를 측정하려면 빛을 보내야 하는데 바로 그 빛에 의해 전자의 위치와 운동량이 변해 정확하게 측정할수 없다는 얘기다. 전자가 워낙 적을 뿐아니라 그 자체가 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물체의 위치 속도 시간 에너지등을 얼마든지 정확하게 측정할수 있다는기존의 역학과는 전혀 다른 주장이다. 주가와 환율의 움직임을 예측한다는건 전자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주식시장에서도 주가를 예측하려는 투자자들이 직접 투자하면서 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주가 예측은 바로 투자자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달려있다고 할수도 있다. 아마도 전화를 건 독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주가는 경제상황을 반영한다는데 위기가 다시 올지를 알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부가 얼마전에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발표한 걸로 아는데 왜 이 모양이냐고. 중남미 국가들은 외환위기를 두세번씩 겪었다는데 우리도 그러는게 아니냐고. 지난 "7.23 주가대폭락"을 보고 2년전 위기상황을 떠올리지 않은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사실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게 아닌가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국내외 경제사정과 정치권의 움직임도 그때와 비슷한 게 많다. 절대 그렇지 않다고 자신있게 말할 자신도 없다. 환란이 자주 재발한다는 중남미국가들의 경우를 보자. 이들 국가에서 외환위기가 다시 터지는건 경제위기의 근본 요인을 철저히 치유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 개혁을 완결짓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완의 개혁, 금융과 재정 및 공공부문의 개혁실패는 금융기관과 기업과 정부의 부실을 다시 부른다는 교훈을 던지고 있다. 이들 국가도 대부분 환란을 당하면 경제회생을 위해 개혁을 추진해 일단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경제사정이 나아지면 다시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경제가 회생되면 개혁에 대한 반발이 터져나오고 개혁이 다시 멈추는 전철을밟았다. 그렇게 되면 국제 금융시장은 다시 환란 청구서를 보내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가. 해야 할 일을 미루거나 포기하지는 않았는가. 경제위기를 당한후 우리가 한일은 무엇인가. 과연 외환위기를 극복했는가. 외환위기를 극복하는데 선봉장을 맡았던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극복의 기준을 어디에다 두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턱없이 모자랐던 외환보유액을 충분히 쌓는걸 목표로 한다면 벌써 위기는 극복됐다고. 그러나 경제가 회복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더 있어야 하고,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가려고 한다면 아마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우리의 목표와 기준은 외환보유액의 확충만이 아니다. 단순한 외환위기의 극복이 목표가 아니라 금융위기 나아가 경제위기를 극복해야 하지 않는가. 외환보유액은 이미 충분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6백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수출이 늘어 경상흑자가 늘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달러를 적극적으로 들여온 덕분이기도 하다. 그 대신 비싼 이자를 물었고 지금 그 빚을 차근차근 갚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초래한 다른 원인은 없었는가. 금융개혁 기업개혁 공공개혁 나아가 정치개혁 교육개혁은 어떻게 됐는가. 가장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금융개혁도 아직 완결이 안된 상황이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그리고 대한생명등 금융기관의 매각작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기업개혁은 최대 고비를 겪고 있다. 최근의 사태는 기업개혁의 험난한 행로와 궤을 같이한다. 정부와 기업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묻고 싶은게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정치개혁과 교육개혁은 굳이 따질 필요조차 없다. 아직 개혁은 진행중이다. 바로 이것이 2년전 외환위기때와는 다른 점이다. 당시 개혁은 아직 착수하지도 않았고 문제점 조차 파악하지 못한 정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부는 문제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단지 정책을 제대로 실행할수 있는냐가 관심거리다. 정치권이 과거 기아자동차 사태때와는 다르다는 점도 희망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걱정스런 것은 투자자들이, 또 국민들이 불안감을 못이기고 비상구를 향해 먼저 뛰어가려는 행동이다. 지난 23일 바로 이런 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났다. 채권단회의에 참석했던 일부 금융기관들이 먼저 투신사에 환매를 요청했다가철회하는 해프닝이 빚어진 것이다. 투자자들이 냉정을 잃지 말아야 시장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게 불확정성의 원리가 주는 교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7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