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빅딜, 목적달성에 실패 .. 조명현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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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현 8월3일자 한국경제신문에 강봉균 재정경제부 장관의 "빅딜, 실패한 정책인가"라는 칼럼이 실렸다. 이 글의 논지는 크게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빅딜은 재계 자율에 의해 진행됐으며 빅딜의 목적이었던 과잉설비 및 과당부채의 해소가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빅딜은 재벌개혁의 일부에 불과하며 정부의 재벌개혁은 과거의 불합리한 경영관행 및 잘못된 지배구조를 바로잡아 IMF사태를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을 치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의 방향성에는 전적으로 동의하나 빅딜이 재계자율에 의해 진행돼 소기의 목적이 달성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빅딜은 강 장관의 주장, 즉 "재벌개혁은... 광범위한 내용으로 추진됐으며 빅딜은 그 일부에 불과하다"에도 잘 나타나 있듯이 재벌개혁의 한 방안으로서기업자율이 아닌 정부에 의해 적극적으로 추진됐고 반도체 자동차 등의 핵심산업에서는 빅딜의 목적달성에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빅딜은 재벌그룹간 사업부문 상호교환 또는 합병을 통해 각 그룹이 경쟁력 있는 사업을 전문화하고 부채비율을 낮추도록 하기 위해 추진됐다. 더 나아가 산업차원의 중복투자와 과잉설비를 줄이는데도 그 목적이 있었다. 이처럼 제대로 된 빅딜은 재벌그룹 개혁과 산업구조조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하는 것이므로 빅딜의 근본취지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빅딜을 잘 살펴보면 시한에 너무 쫓겨 빅딜 본래의 취지보다는 "빅딜을 위한 빅딜"의 추구로 본질이 변모돼 갔고 경제논리와 시장원리에 의해서 진행됐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비록 철도차량 항공기 발전설비 등의 산업에서는 통합법인 설립 등 어느 정도 "스몰딜"의 긍정적 효과가 있어 보이나 반도체 자동차 전자 등 향후 한국경제의 앞날과 직결된 주요산업들에서는 "빅딜"은 무산되거나 오히려 부정적 효과가 컸다. 예를 들어 강 장관이 "통합 대형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기업간에사업을 이전해 중복투자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한 반도체산업 빅딜의 경우를 살펴보자. 빅딜이 처음 논의될 당시만 해도 반도체산업 전망은 그리 밝지 못했고 글로벌한 차원에서 과잉설비가 문제되었다. 또한 LG반도체와 현대전자 반도체 부문은 적자를 내고 있었기 때문에 반도체산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존재했다. 하지만 빅딜이 실지로 이루어질 당시엔 반도체 산업경기가 다시 상승국면으로 진입했다. 빅딜 대상 업체들은 생산라인을 풀가동시킬 뿐 아니라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따라서 당시 여론은 통합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먼저 이처럼 변화된 환경하에서 두 회사의 통합이 우리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정부는 통합을 밀어붙였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현재 반도체 경기는 호황을 구가하고 있으며 생산방식이 다른 두 회사의 빅딜은 통합 대형화를 통한 경쟁력향상이라는 시너지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강 장관이 "재벌간 핵심역량을 중심으로 통합하되 사업부문 상호교환 방식으로 추진되었다"고 설명한 소위 "슈퍼 빅딜"이라는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간의 빅딜도 핵심역량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인다. 애당초부터 그룹별 업종단순화라는 이점을 제외하고는 그 규모에 비해 시너지효과가 별로 없었다고 본다. 핵심역량은 경쟁사와 비교해 무엇을 잘하는가를 나타내는 상대적 개념이다. 따라서 대우가 글로벌 경쟁이 벌어지는 자동차산업에 핵심역량, 즉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따라서 삼성자동차를 대우에 넘기는 것은 대우의 핵심역량강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만약 업종전문화가 목적이었다면, 오히려 대우전자의 경우엔 매각 등의 방식에 의해 대우그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시키는 것이 대우전자가 지금까지 세계경영을 통해 구축한 유.무형의 자산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런 매각이 진작 이루어졌다면 현재의 대우사태는 그 파급 부작용이 훨씬 감소됐을 것이다. 삼성자동차의 경우엔 애초부터 삼성그룹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매각 등의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빅딜에 포함시켜 국민부담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다. 정부는 빅딜을 비롯한 여러 경제 정책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시행착오에 대해 인정하고 논의하는 것이 향후 재벌 개혁정책의 추진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유사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