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율려운동

지난주 서울에서는 "율려학회"라는 생소한 이름의 문화운동 단체가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했다. 각 분야의 예술가 비평가들이 주축인 이 학회의 회장은 시인 김지하씨가 맡았다. 율려란 6세기께 주흥사가 양무제의 명을 받아 2백59구의 운문으로 지은 "천자문"의 여덟번 째 구 "율려조양"에서 나온 말이다. 글자 그대로 옮기면 율과 여로 음양을 조화시킨다는 뜻이다. 고대 중국음악은 12음으로 짜여지는데 그중 6율은 양이고 6여는 음으로 음양이 조화돼야 만물이 다스려진다는 넓은 의미의 뜻도 지니고 있다. 12음중 중심음을 "황종"이라고 부른다. 율려학회는 우주질서와 문화의 원형, 즉 중심음을 되찾아 대중화 한다는것을 목표로하고 있다. 여기서 중심음이란 음악에서 뿐만 아니라 만물의 척도가 된다. 복고적 느낌이 드는 것도 숨길수 없는 사실이지만 다른 학회와는 달리 예술 뿐만아니라 인간중심주의에 빠진 현대인의 인간성까지도 변화시켜 보려는 야심찬 이상이 강하게 감지되기도 한다. 이 문화운동을 이끌어 갈 김지하씨가 그동안에 언론에 인터뷰등에서 토로한 율려운동에 대한 견해를 종합해 보면 지금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요 우주의 중심이라는 서양 기동교문화의 오만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는 주장이 밑바침되어 있다.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고대 동양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육체보다 정신이 더 강조되기도 한다. 곳곳에서 우리의 옛사상인 풍류도 신선도 단학 등이 강조되고 강증산이나 동학사상이 거듭 중시되는 걸 보면 강한 민족주의적 색채도 발견된다. 율려문화운동의 첫 실체로 내년 8.15에 보여줄 작품이 단군시대를 다룰 "신시"라는 것도 그렇다. 때로는 생태주의자로,때로는 종교사상가로, 때로는 민족주의자로 보이기도 하는 그의 사상은 이처럼 범인이 종잡기 어렵다. 오늘날은 현실만 있고 이론이 없는 시대라고 한다. 따라서 새천년을 이끌어갈 이론의 탐색은 계속돼야 하겠지만 일부의 독단론이 대중의 문화운동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