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박경리씨 모습은 어땠을까 .. 계간 '문학과 의식'

계간 "문학과 의식" 가을호에 작가 박경리(73)씨의 30여년 전 모습이 실렸다. "시장과 전장" "파시" 등을 발표한 뒤 얼마 안되던 때의 사진이다. 40대 초반의 박씨는 집 뜨락이나 집필실 한 켠에서 활짝 웃고 있다. 23년전 사진도 눈길을 끈다. 눈빛 또랑한 손자를 업고 마냥 행복해하는 그의 눈매가 한없이 따스하다. 지금은 검은 머리가 희게 변했고 세상도 많이 달라졌지만 시간의 물굽이를 지나면서도 변함없는 작가의 "마음 집"은 그대로인 듯하다. 한국문학의 거대한 산맥으로 자리잡고 있는 그는 원래 숨어있기를 좋아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꺼린 탓에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토지" 집필에 장장 25년을 바치면서 어두운 시대의 들판을 홀로 지나왔다. 할 말이 있으면 작품으로 하고 무엇을 주장할 때도 전면에 나서지 않는 편이었다. 그의 작품을 읽을 때는 곧바로 광맥의 중심으로 들어가면 되지만 그의 삶을 살피려면 에둘러 가야 제대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작가특집은 고무적이다. 문학평론가 정현기씨는 그의 작품세계를 "생명사상"으로 요약했다. 정씨의 박경리론을 읽다보면 작가가 요즘 "수동식과 자동식"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이유도 알게 된다. 박경리씨는 자동식을 선호하는 시대에 수동식의 미질을 일깨우며 생명존엄의의미를 강조한다. 이는 현대 문명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통찰의 결과다. "문학과 의식"은 박씨의 사진과 함께 "사진영상과 문학적 상상력"을 특집으로 마련했다. 문인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여기에서 얻은 작품, 창작 모티브, 영상과 활자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특히 영상 쪽에서는 이상빈 한국외대 교수의 기획연재를 통해 "문학과 수용소"의 문제를 살폈다. 나치에 의한 수용소 체험의 예술화와 철학적 진술을 토대로 한 영화 "쇼아"도 그중의 하나다. 상영시간만 9시간이 넘는 이 영화는 구미에서 지식인들의 자기성찰과 예술적 질료로 작용한 화제작이다. "문학과 의식"은 오는 9월11~13일 원주 토지문학관을 찾아 문학심포지엄을 열고 이 영화를 감상하는 기회도 갖는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