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70년대식 수출진흥회의

"아직까지 70년대 방식의 수출진흥회의를 하자는 겁니까" 종합상사 사장들이 때아닌 워크샵 준비에 바쁘다. 18일 정덕구 산업자원부 장관이 주재하는 수출확대 전략회의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날 회의 안건은 최근 수출입 여건과 전망에서부터 수출규제및 통상 마찰 대응방안 등 모두 7가지다. 각 종합상사 사장들에게는 이중 2개씩 과제가 할당됐다. 원활한 토론과 회의진행을 위해 발제자료를 준비해달라는 협조요청도 뒤따랐다. 종합상사는 이에 대해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바쁜 기업인을 오전부터 불러 6시간넘게 붙잡아놓겠다는 발상부터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 주제별로 할당된 토론시간은 15분~40분가량. 얼마나 진지한 토론이 이뤄질지 의문스럽다는게 토론자료를 준비하는 종합상사 실무자들의 얘기다. 마치 정장관 취임 초기 산자부 공무원들 사이에서 때아닌 학습열풍이 불던 상황을 연상시킨다(S사 L부장). 더구나 이번 회의는 수해와 임시국회 일정이 겹치면서 두 번이나 일방적으로연기됐다. 기업의 처지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회사는 17일 오전까지 "대타"를 내보낼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회의안건은 모두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결코 소홀히할 수 없는 현안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현안을 챙기는 방식이다. 20명이 넘는 산하기관장과 유관단체장까지 한자리에 불러놓고 1인당 3분씩 시간을 할당해주는 "멍석 깔아주기"가 얼마나 효과적일지 의문이다. 정부의 생색내기 행사에 들러리나 선다는게 기업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산자부는 정장관 취임 초기에도 민간경제단체인 무역협회 업무보고를 정부청사에서 받겠다는 황당한 주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종합상사들도 전임 장관 재직시절 동남아 방문에 맞춰 대형 프로젝트계약 일정까지 조절했던 경험이 있다. 기업경영은 전적으로 개별 기업의 문제다. 정부의 동원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하는 경직된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을까. 18일 회의에서 어떤 거창하고 획기적인 수출진흥책이 나올지 기대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