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금감위의 '보이지 않는 손'

한국 금융시장에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19일 대우그룹 문제가 수면위로 드러난 이후 이 손의 활약은 눈부실 정도다. 채권 투매방지, 수익증권 환매 금지에 이어 국민의 쌈짓돈까지 금융시장에 묶어 두는데 성공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절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린다. 지난 12일 일반인의 수익증권 환매억제 대책을 발표할 때는 증권사 투신사 사장단의 이름을 빌렸다. 지난 16일 은행권의 수익증권 환매 자제 결의가 나왔을 때도 은행장 명의였다. "보이지 않는 손"의 활약은 주로 전화로 이뤄진다. 투신사 펀드매니저, 은행 자금담당자, 증권사 채권딜러에게는 주로 전화로 협박한다. "무조건 팔지도 말고, 찾지도 말라"는 것이다. 금융시장 사람들은 이 "보이지 않는 손"을 "마수"라고 부른다. "보이지 않는 손"은 태연하게 거짓말까지 한다. 지난18일 증권업협회는 MMF(머니마켓펀드)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들에게는 비대우채권은 원리금의 1백%,대우채권은 95%까지 지급하겠다고 증권사 사장단들이 자율결의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자율결의는 있지도 않았다. 증권사 사장단은 모여서 회의를 연 적도 없다. 대부분의 증권사 사장들은 19일 아침 신문을 펼쳐 들고서야 그 내용을 알았다. "보이지 않는 손"의 실체는 다름아닌 금융감독위원회다. 금감위 고위관계자는 최근의 증권 투신업계 등의 결의에 대해 "결코 그런일이 없다"고 강변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금감위의 "수렴청정"은 "손에 피묻히기 싫어서"라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사실 대우그룹 문제로 금융시장은 실패했다. 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 정부가 나설수 밖에 없다는데 모두 동의한다. 금감위는 뒤에 숨어서 정책을 집행할 상황이 아니다. 공개석상에서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 합리적 결정을 할 시점이다. 금융기관 최고경영자의 "줏대없는 경영"도 금감원의 "보이지 않는 행정"을 가능케 만들고 있다. 증권사 사장들은 지난18일 오후 개인들에게는 MMF 전액지급을 약소했다가 금감위의 지시를 받고 밤늦게 방침을 바꿨다. 금감위와 증권사 사장단은 최근 일련의 꼭둑각시 놀음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선량한 국민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