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란' 무죄판결] 잘못된 정책판단 처벌 못한다..의미/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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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내려진 "환란" 무죄판결은 정책적 판단 잘못을 사법적으로 단죄할 수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데 의미가 있다. 온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환란책임자를 도덕적 정치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어도 법의 잣대로는 어쩔 수 없다는 뜻이다. 결국 환란책임자를 기소한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무죄판결의 파장은 적지 않다. 우선 그동안 재판을 지켜봐온 국민들의 허탈감과 분노를 지적할 수 있다. 무죄가 선고되자마다 시민단체들이 "그럼 우리가 겪었던 고통은 누가 책임지느냐"며 항의성명을 잇따라 쏟아낸 데서 이를 읽을 수 있다. 검찰은 검찰대로 당황해 하고 있다. 즉각 항소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다지 힘이 실려 있는 것 같아 보이지는않는다. 애초부터 맡지 않으려 했던게 검찰이었다. 정치권도 시끄러워지게 됐다. 환란책임자 기소를 "정치보복" 혹은 "국민분풀이용"으로 몰아세울게 뻔하다. 반면 이번 판결은 당시 유행했던 협조융자 지시를 부당대출 압력으로 판단,관치금융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한 공도 있다. 협조융자가 유죄로 인정된 첫 케이스다. 이번 판결은 재판부의 고심에도 불구하고 환란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준 역사적 기록임에는 분명하다. 부문별 판결의미를 풀어본다. 기아자동차 처리 =강씨가 기아차를 조속히 처리하려 했고 국가경제적 손실을 최소화하려 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강씨가 기아문제의 처리에 대해 정부는 관여하지 않고 채권은행단과의 협의에 맡긴다는 입장이 이중적인 태도로 보였을 수도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국제적 위치를 고려해 나온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설명이다. 또 재판부는 기아차에 대한 정부개입을 정당한 것으로 봤다. 기아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부도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협력업체의 연쇄도산, 대외적 신인도의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정부개입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경제운용을 책임지고 있던 피고인들 입장에서는 방관보다 개입이 옳았다는게재판부의 판단이다. 외환시장개입 중단 지시 =지난 97년 10월28일 치솟는 환율을 막기 위해달러를 쏟아부은 것이 적절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재정경제원 장관이 한국은행에 외환시장개입을 중단하라고 한 것을두고 직권남용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외국환관리규정상 재경원장관이 한은의 시장개입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될 경우 개입중단을 포함한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와 별도로 강씨가 한은에 외환시장 개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강씨는 윤증현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에게 "한국은행 총재와 협의해 환율운용을 한국은행이 책임지고 시장원리에 따라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해준 것으로만 나타났다. "환율운용을 한은이 책임지라"는 강씨의 지시가 "외환시장 개입중단"으로 와전됐다는 말이다. 외환위기 보고 =97년 10월29일 외환시장 거래중단에 따라 외환위기로 급진전할 가능성을 인식했는데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대로 전달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외환위기를 은폐 축소보고한 "범죄"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외환시장 거래중단에 대해 "외환시장 마비"라는 표현으로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해서 의무를 져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가장 논란의 대상이 됐던 부분은 97년 11월10일 강씨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했느냐는 대목.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강씨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강씨와 김씨에게 조속히 IMF행을 결정하지 못한 점을 탓할 수 있을지몰라도 IMF 구제금융 요청을 회피하려고 당시의 외환위기 실상을 은폐 축소보고 했다고는 볼수 없다는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IMF행 발표계획 인계 =강씨가 IMF 구제금융요청 사실을 기자회견에서 발표키로 했으나 경질당해 취소했다. 장관이 교체되면 업무인수인계는 통상 부하직원이 업무보고 형식으로 인수인계 받는게 관행이어서 강씨가 일부러 IMF행 발표방침을 인계하지 않았다고보기는 힘들다고 법원은 밝혔다. [ 환란사건 부문별 선고 내용 ] 진도그룹 협조융자 부당압력 : 채권은행단에 압력행사 인정. 사회적 파장 고려한 점과 국가발전 헌신한 점 감안 (유죄(자격정지 1년/선고 유예)) 기아처리 개입 직권남용 : 금융시장 불안, 연쇄도산, 대외신인도 등 파장 커 조속처리 노력 인정 (무죄) 외환시장 개입 중단지시 직권남용 : 외환관리규정상 한국은행의 외환시장 개입이 적절치 못하다고 판단하면 재경원장관이 중단지시 가능 (무죄) 외환위기 보고 소홀 직무유기 : 외환위기 가능성을 인식하고도 의식적 으로 은폐, 축소했다고 볼수 없음 (무죄) IMF 발표계획 인계의무 직무유기 : 후임장관이 누구인지 몰랐음. 일부러 인계하지 않으려는 의도 없음 (무죄) 주리원백화점 부당대출 압력 : 피고인이 퇴직후 친분이 있던 조흥은행 전무에게 적극적으로 요청해 이뤄진 것이지 은행장에게 지시해 이뤄진 것은 아님 (무죄) 외환사정 보고 미흡 직무유기 : 외환사정이 어려운데도 책임문제 명예 실추 등을 우려해 사실을 호도하고 축소 보고했다고 인정할 수 없음 (무죄) 해태그룹 협조융자 압력 : 압력행사 인정되나 사회적 파장 우려한 것이었고 개인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은 점 참작 (유죄(자격정지 1년/선고 유예))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