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이중가격제'의 불편

요즘 프랑스에서는 과일 채소 사는 일이 그리 간단한게 아니다. 가격이 올라서도 아니고 농산물품귀현상 때문도 아니다. 농산물 이중가격표시제가 그 이유다. 포도 1kg 3프랑25, 0.5유로, 19프랑50, 3유로. 지난 16일자로 프랑스 전역에서 실시되고 있는 농산물 이중가격 표시제의 실례다. 첫번째 수치는 농산물 경작자에게 지불된 프랑화 가격이고 두번째는 이를 유로화로 계산한 것이다. 세번째는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프랑화 가격이며 네번째는 유로화로 환산한 소비자 가격이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사과 배 복숭아 등 9개 품목에 대해 이중가격제를 실시키로 결정했다. 전국 체인망을 갖고 있는 메가급 유통업체들의 가격인하 압력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형 유통업체들의 생산자에 대한 가격인하압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6월 코카콜라 로레알 P&G 다논을 중심으로 한 납품업체들은 EU공정거래위와 프랑스 공정거래위에 대형 유통업체들의 횡포를 막아달라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유통업체들이 가격파괴전이나 기획상품전을 하며 그 부담을 생산자에게 다 떠넘긴다는 불만이다. 이어 지난달에는 농부들이 반기를 들었다. 가격하락으로 겪는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유통업체들은 구입원가의 3~5배에 달하는 가격으로 폭리를 취하니 정부가 대책마련을 해주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일어섰다. 전국 농산물 경작자 연합측은 계절에 따라 신축성있는 농산물 최저가격제 실시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는 유럽연합 상품 자유거래법에 어긋난다. 역내 국가에서 유입되는 농산물에 적용할 수도 없다. 결국 정부는 농산물 이중가격제를 실시해 소비자들로 하여금 유통업체가 중간에서 얼마나 이익을 취하는 지 알도록 하는 방법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소비자들로서는 이중가격제가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다. 과일 1kgK을 사기 위해 4중가격을 읽어야 한다. 구멍가게 주인들도 매일 변하는 농산물 가격을 이중으로 표시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영세 과일상 연합은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됐다며 이중가격제 보이콧을 외치고 있다. 차라리 벌금을 내는게 이중가격제를 실시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란게 이들의 설명이다. 대형 유통업체의 횡포를 막자고 실시한 이중가격제가 이젠 정부와 과일 소매상의 싸움으로 번질 조짐이다. 결과가 어떻게 날지 두고 볼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