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말뿐인 '금리자유화'

한미은행이 지난 25일 예금금리를 내렸다. 금리를 올린지 열흘만이다. 이에앞서 외환은행 제일은행도 예금금리를 인하했다. 고금리 예금을 찾아 이들 은행을 갔던 고객들은 발걸음을 돌려야했다.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다시 낮춘건 "시장의 힘"이라고 보기 어렵다. 은행들이 지난주중 예금금리를 올리자 금융감독원은 대출금리도 함께 오른다며 창구지도를 통해 즉각 제동을 걸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란다고 생각했던지,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지난 23일 70여개 금융기관들장을 모아놓고 금리인상을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은행장들은 그 자리에서 금리를 올리지 않겠노라고 "도원결의하듯" 합의했다. 합의문까지 작성됐다. 어쨌든 현재는 모두 금리를 올리기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이번 소동은 금융자율과 금리자유화라는 시각에서 봤을 때 금융당국과 은행들에 적지 않은 흠집을 남겼다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정부는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 시장참여자들에게 이런 저런 행동을 주문할 수 있다. 화폐금융론도 통화정책의 한 수단으로 도덕적 권유(moral suasion)를 다루고 있다. 금융기관이 공공이익에 보다 적합한 행동을 하도록 정부가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가격변수까지 조작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강연회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을 명확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해야할 일"로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든 그는 정부가 시장구조나 가격결정에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를 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인위적으로 가격을 조작하는 일에 정부가 끼어들어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원칙없는 금리조정을 한 은행들도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세금리 연동형 상품이라고 해놓곤 시장금리가 올라가는데도 정부정책에 부응한다며 금리를 내리는건 결국 고객을 기만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정운찬 서울대 교수는 지난 21일 모 학술제에 참석, "권한이 없는 곳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법"이라며 은행부실채권을 정부가 책임져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정책금융을 전제로 깔고 한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책금융은 계속되고 있고 은행은 "권한"없는 것 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8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