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주주총회'] '시사평론가 유시민씨 참관기'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 286 AT 컴퓨터가 처음 들어온 것이 1989년. "세계 최초의 정치 소수주주총회"가 열리기까지 10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눈부시다는 말로는 부족할 만큼 빠른 변화다. 포스닥 주총은 앞으로 다가올 거대한 파도의 첫 물결인지도 모른다. 청바지와 단추를 두개쯤 열어놓은 티셔츠, 형형색색의 배낭,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갈색물 들인 머리카락. 20대가 주류를 이룬 "정치주주"들과 "블루칩 국회의원"들의 첫 만남은 일종의 "문화충돌"이다. "오늘 의원님의 주가가 얼만지 아십니까?" 이런 질문으로 문을 연 주주총회에서, "항상적 감시와 평가의 대상"이 된국회의원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면서도 결코 그 감시가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X세대"니 "N세대"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니, 어른들의 걱정과비아냥을 듣는 젊은이들의 그 어디에 저런 진지함과 정치적 관심이 감추어져있었을까? 각각 일곱명의 주주가 둘러앉은 열네개의 테이블에서 동시에 진행된 의정보고와 질의응답은 국민회의의 1+알파 신당전망과 자민련의 정체성확보문제,한나라당의 민주산악회 파동 수습문제 등 거시적 정치쟁점에서부터 "전자민주주의"의 효용과 부작용문제에 이르기가지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펼쳐졌다. 이 이벤트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평소 만나던 지역구 유권자나 민원인들과는 전혀 다른 "정치주주"들 앞에서 국회의원들은 조심스럽고 겸허한 태도를 보였다. 텔레비전이나 사이버 공간이 아니라 실제상황에서 자신이 "투자를 한" 국회의원들을 만난 네티즌들 역시 "정치적 오빠부대"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의 필자를 만나지 말라"는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작성하게 될 주총 결과보고서와 평가가 향후 포스닥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두고 볼 일이다. 1999년 9월9일, 다섯번의 9자가 든 1천년에 한번 뿐인 날의 이 "문화충돌"은 그 시작이 그리 장대하지는 않았다. 국민회의의 신당창당 발기인으로 선정된 다섯 의원은 청와대 만찬 때문에 일찍 자리를 떴다. 공식행사가 마감된 오후7시30분에서 30분이 지난 시점까지 "주주"들에게 넉넉한 시간을 내준 의원은 5명뿐이었다. 아직 포스닥 시장은 청와대 만찬이나 의원들의 개인약속을 밀어낼 힘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랴. 개장 두달만에 2만3천명이 가입한 포스닥 시장이 내년 총선때 얼마나 커질지. 그리하여 상위 30등에 들어 초청을 받고도 이번 주총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이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될지.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