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청진동 술국

조선후기에 나온 "해동죽지"라는 책에는 "효종갱"이라는 요즘 해장국과 흡사한 국에 대한 풍속이 실려 있다. 글자 그대로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을 말한다. 광주에서 국을 끓여 서울의 재상집에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이면 닿는다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버섯 표고버섯 쇠갈비 해삼 전복을 넣고 고았다는 것을 보면 이것이 최상급의 해장국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는 광주의 해장국도 이름나 있었던 모양이다. "술국" "양골탕"이라고 불려오던 해장국은 요즘도 그렇지만 특히 서울 청진동의 것이 유명했다. 소뼈를 고은 국물에 된장을 풀어 간을 맞춘뒤 배추우거지 콩나물 호박을 넣고 밤새 고은 일종의 토장국이다. 옛날에는 요즘처럼 선지나 양을 넣지 않았다. 또 밤새 술을 먹은 술꾼들이 해장하기 위해 먹는 음식만도 아니었다. 일제때만 해도 뚝배기를 술집에 맡겨놓고 베보자기에 밥을 싸가지고 오는 사람, 사다 먹는 사람이 많았다. 해장국이란 이름을 얻은 것은 해방뒤의 일이다. 언제부터 서울의 청진동이 해장국으로 유명해졌는지는 분명한 기록은 없지만이 일대는 조선왕조초부터 밤을 새워 서울로 들어오던 나무.채소장수등 상인들로 북적댔던 곳이다. 그들의 요깃거리가 술국이었으니 청진동의 해장국은 그만큼 유서가 깊다. 청진동 재개발지역 주민들이 최근 서울시의 20층이상 고층개발정책에 맞서 재개발구역해제를 요구하는등 탕국과 당국과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요구사항 중에는 청진동 해장국 골목을 인사동과 연계시켜 전통풍물을 보존하는 "음식문화의 거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들어 있다. 도심개발은 도시의 대대적인 외과수술이다. 수술이 제대로 되면 도시의 미관도 아름다워지고 공간의 효율성도 높아지지만 잘못되면 도시는 죽은 도시가 된다. 이번 기회에 사업성만 강조한 고층빌딩위주의 비인간적 개발계획을 고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비인간적 공간은 도시를 파괴한다. 적절한 무질서가 도시다운 활기찬 분위기를 살린다는 학계의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