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3일자) 국제금융센타 보고서 파문

현대그룹의 외화 유동성위기 가능성을 지적한 국제금융센타의 특별보고서 내용이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대우사태로 인해 가뜩이나 불안한 금융시장이 과민반응을 보인 탓도 있지만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의 강경처리 영향도 적지않아 보여 정부의 대기업정책속도조절이 요망된다. 특히 악성소문을 신속히 해명하고 진정시킬 책임이 있는 관계당국마저 우왕좌왕하며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던 것은 반드시 그 경위와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일이다. 파문의 진원지는 국제금융센타가 지난 10일 내놓은 "대우그룹 문제의 타그룹파급효과"라는 특별보고서다. 대우사태 이후 몇몇 외국계은행 서울지점들이 현대그룹을 비롯한 일부 대기업들에 대해 신용한도를 줄이고 여신을 회수하고 있어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인데, 이것이 과장.왜곡돼 외부에 유포된 것이다. 일부 외국계 은행들의 움직임을 확대해석한 보고서 내용에도 문제가 없지 않지만 특히 특정기업의 이름을 밝힌 보고내용을 함부로 유출시키고 사후대응도 게을리 한 국제금융센타의 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국제금융시장의 위기발생 가능성을 조기경보 하기 위해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각각 50억원씩을 공동으로 출자해 만든 국제금융센타는 처음부터 중복.과잉투자가 아니냐는 시비가 적지 않았다. 더욱 한심한 일은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이 서로 책임을 미루며 시간을 끌다가 해명자료마저 부실하게 내는 등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도 이런 잘못된 자세와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즉각 시정돼야 할 것이다. 사실 이번과 같은 파문은 어느정도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올해들어 제일은행과 서울은행, 그리고 대한생명 등 부실금융기관의 해외매각이 진전을 보지 못하고 표류하자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를 의심하는 국내외 시각이 적지 않았다. 대우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MMF 환매제한 번복 등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렀고 해외채권단의 반발을 무마하는데도 실패하는 등 미숙한 일처리를 거듭했다. 검찰을 비롯해 재정경제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주요 정부기관들이 토끼몰이 식으로 일제히 재벌에 대한 강경입장을 밝히고 나온 것이 대기업들의 신용을 크게 떨어뜨린 것은 물론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까지 터졌으니 일부 외국계 은행들이 신용한도를 줄이고 가산금리를 올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신용추락은 일차적으로 해당기업의 책임이지만 국내 최대기업인 현대그룹의 신용마저 흔들린데는 경직된 대기업 정책 탓도 크다고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