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세기말적 재해석..'레이디 맥베스'/'햄릿...'

영혼을 잠식하는 세기말의 불안 때문일까. 셰익스피어의 비극 2편이 나란히 서울연극제 공식초청작으로 무대에 오른다. 한태숙이 각색.연출한 "레이디 맥베스"(극단 물리)와 김아라의 "햄릿 프로젝트"(극단 무천). "공연양식의 재발견"이란 연극제 주제에 걸맞는 실험정신으로 꾸미는 두 무대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세기말의 불안한 시선으로 조망한다. 10월2~15일 문예회관 소극장 무대에 오르는 "레이디 맥베스"는 남편을 사주해 왕위를 찬탈하게 한 후 욕망과 죄의식 사이에서 번민하는 여인 맥베스의 이야기. 덩컨 왕을 집으로 초대해 살해한 맥베스 부부의 범죄행위는 궁중전의가 맥베스 부인의 몽유병 증세를 치료하는 과정을 통해 전모가 드러난다. 극은 맥베스 부인의 의식을 좇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녀의 양심을 추궁한다. 지난해 초연때보다 무르익은 연기를 선보이는 서주희와 새롭게 궁중전의로 등장한 정동환의 선 굵은 연기가 무대위에 새로운 탄력을 불어넣는다. 정동환은 궁중전의와 레이디 맥베스의 의식속에 자리한 남편 맥베스를 오가며 그녀의 양심의 문을 연다. 오브제 아티스트 이영란과 악기연주자 원일도 무대 전면에 나선다. 이영란은 흙과 밀가루로 빚은 덩컨왕의 형상과 원죄의 상징인 뱀을 통해 레이디 맥베스의 죄의식을 옥죈다. 원일은 피리, 공, 자일로폰(아프리카 원주민 악기) 등 다섯종류의 악기를 혼자서 연주하고 슬픈 구음으로 그윽한 양심의 공명을 빚는다. 내면 깊숙한 곳으로부터 울려퍼지는 듯한 악기소리는 레이디 맥베스의 갈등과 조화를 이루며 긴 여운을 남긴다. (02)765-5475. "레이디 맥베스"가 관객들에게 느낌을 전달하는 작품이라면 22일부터 문예회관 대극장무대에 오르는 "햄릿 프로젝트"는 시청각적인 연극이다. 영국 극단 로얄 셰익스피어 컴퍼니가 지난 63~64년 공연한 "마로위츠 햄릿"을 김아라가 새롭게 각색, 광기의 햄릿을 콜라쥬 형식으로 전달한다. 사건의 흐름을 중시한 원작과 달리 온갖 잡다한 의식의 파편들을 무대위에 그렸다. 느끼고 판단한 대로 자유로이 조직된 햄릿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우유부단한성격으로 비극적 파국을 맞는 전통적인 햄릿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폭력적 현실앞에서 광기로 치닫는 인간의 대응방식을 보여준다. 황신혜밴드의 리더 겸 보컬리스트 김형태가 햄릿을 맡았고 그룹 모하비의 서민규가 라이브로 연주한다. 컴퓨터와 기계음이 만들어 낸 테크노음악이 무대음악으로 등장한다. 김아라 특유의 실험성과 도발성이 담겨있는 무대다. (02)764-3375.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