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철도 1백년

개항직후 우리나라에서는 기차를 금화도, 비행기를 "풍륜차"라고 불렀다. 서양의 기술을 "오랑캐의 사악한 곡예" 정도로 적당히 인식하고 있던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무렵 왕이나 조정대신들의 철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역할을 한 것이 "기차의 모형"이었다는 사실은 퍽 흥미롭다. 1899년 주미대리공사 이하영이 일시 귀국할때 가져온 정교한 금속제 기차모형 한 셋트는 고종과 신하들이 철도를 건설해야겠다는 결단을 내리는데큰 몫을 했다. 열강의 각축속에서 먼저 눈독을 들였던 일본을 제치고 한국최초의 경인선 철도부설권은 1896년 미국인 모스(J R Morse)가 따냈다. 모스는 이듬해 인천의 우각현에서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고 일본의 공작에 밀려 1백만달러를 받고 부설권을 일본철도합자회사에 양도하고 만다. 1899년 궤도부설에 착공한 일본은 그해 9월18일 마침내 노량진~제물포간 33.2km의 경인선을 개통했다. 뒤이어 1905년 경부선, 1906년 경의선, 1914년 호남선 경원선이 개통돼 기간철도망을 갖췄다. 오늘은 한국철도 1백주년이 되는 날이다. 현재 철도의 길이는 6천6백83km, 역은 6백32개소, 차량수는 1만8천7백93량에이른다. 화물은 물론이고 하루 2백27만명이 이용하는 중요한 대중운송수단이다. 70년대 경인.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한때 천덕꾸러기가 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관광상품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개선해 인기를 되찾아가고 있다. 시속 1백50km가 고작인 속도가 문제지만 2004년 경부고속철도가 개통되면 자연히 해결될 일이다. 1905년 5월25일 서울역전에서 열린 경부선 개통식에서 미국공사 알렌이 했던 축사의 한구절이 생각난다. "후일 나는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차장에게 "남대문에서 내려주시오"라고 말할수 있는때가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경의선이 이어져 대륙횡단열차로 유럽에 여행하는 것도 꿈만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보면 철도의 미래는 밝기만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