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웃어라 추석

온가족이 아침 일찍 차례를 지낸 뒤 성묘를 하고 동네사람들로 구성된 풍물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한다. 그리곤 며느리에게 떡 술 닭등을 들고 친정에 다녀오도록 말미를 준다. 멀리까지 보내기 힘들면 친정과 시집 중간 경치좋은 곳에서 며느리와 친정어머니가 만나도록 하는데 이를 중로회견 또는 반보기라 한다. 우리 조상들에게 추석은 이처럼 감사와 만남, 나눔의 명절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주부들에겐 추석이 기쁘고 반가운 명절은 커녕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날이 됐다. 남자들이 오랜만에 친지를 만나 회포 풀고 신나게 노는 동안 여성들은 하루종일 부엌에서 음식준비와 설겆이하느라 허리도 못편채 지내는 날이 돼버린 탓이다. 집에선 곧잘 도와주던 남성들도 부모님이나 다른 형제들이 흉본다는 핑계로 손을 놓아버린다. 핵가족끼리 식사할 때도 주부가 밥과 국을 푸는 동안 다른식구들이 수저를 놓고 반찬그릇을 옮겨주면 상차림시간이 한결 단축되고 주부 혼자 늦게 밥먹는 일이 없어진다. 끝난 뒤 빈그릇만 각자 개수대로 옮겨줘도 치우기가 훨씬 수월하다. 집안일은 가치없는 일,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만 깨면 주부들을 명절증후군에서 해방시킬수 있다. 우리나라 남성의 60%이상이 "남자다워야 한다"는 과도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이때문에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조사결과도 있거니와 남녀의 성역할이란 어디까지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성민우회가 "웃어라 명절"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제한한 "함께 일하기,딸도 조상모시기, 시집과 친정 번갈아 방문하기, 여자도 절하기" 등은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실천가능한 내용들이다. 아내와 엄마가 명절만 다가오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소화도 안되면 다른식구들 또한 편안할 것같지 않다. 장보기부터 음식만들기 설겆이까지 조금씩만 거들면 ''함께 즐기는'' 명절의 본래의미를 되찾을수 있다. 나아가 올해도 탈없이 한자리에 모인데 감사하고 작은정성으로나마 힘겨운 이웃을 찾아보면 20세기의 마지막 추석을 "더불어" 웃으며 보낼수 있지 않을까.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9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