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임준수 스크린 에세이) '식스 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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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유령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많은 심령작가들이 온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살아있는 인간들에 유령을 보여줬다. 그중의 하나-심령 스릴러 "식스 센스(The Sixth Sence)"에 나오는 유령들은 정상인에 가깝다. 거의가 비명횡사란 원혼들이지만 동양의 원귀처럼 머리를 산발하거나 혓바닥이 나오지 않았다. 허공을 떠 돌지도 않는다. 원통함이 가슴속에 맺혀 있어도 산 사람을 놀라게 하는 괴기스런 모습을 뵈지 않는다. 한결같이 죽을 당시의 차림 그대로다. "식스센스"의 유령들은 매우 양순한 인상을 준다. 그들은 자신이 유령인 줄 모르고 행동하며 보고 싶은 것만 골라 보는 독특한속성을 갖는다. 꼴보기 싫은 것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고 보면 매우 편리한 눈을 가졌다 하겠다. 더욱 편리한 것은 아무리 대로를 활보해도 인간들이 그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암행어사가 있던 시절, 귀신들에게 그 일을 맡겼더라면 탐관오리들이 남아나지 못했을 법 하다. 그러나 귀신 따로, 인간 따로 놀아서는 이야기가 성립되기 어렵다. 그래서 "식스 센스"는 유독 한 소년에게만 귀신을 볼 수있는 초능력을 부여하여 인간과 혼령간의 다리를 놓는다. 소년은 못 볼 것을 보는 능력때문에 정신질환자로 몰려 고통을 겪는다. 그에게 유일한 위안은 그의 고통을 이해하며 도와주는 심리치료사와 사귀는 것이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고통받는 소년과 소년을 돕는 치료사의 끈끈한 인간관계로 엮어져 있다. 그 사이에 귀신들이 끼어들어 자못 괴기분위기를 연출하지만 관객들을 혼비백산시키는 공포분위기는 거의 없다. 가슴을 죌만한 긴장감도, 머리칼이 설만한 스산함도 없지만 관객들이 잠시도스크린에서 눈을 떼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냥 심심풀이로 봤다가는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전개와 구성이 치밀하고 난해하다. 막판에선 기존의 스토리를 완전히 뒤엎어 관객들을 망연자실하게 하는 수법을 보인다. 영화적 기교에 관계없이 이 영화는 몇가지 매우 감동적인 인간상을 보여준다 귀신에 시달리는 소년의 절제있는 감정표출이 그렇고, 아들의 비정상 행동이짜증스러워도 인내로써 그것을 극복해가는 엄마의 이성적인 대응이 그렇다. 특히 블루스 윌리스가 보여주는 전문가적 양심이 인상적이다. 심리치료사로서 환자에게 직무태만을 하지나 않았는지 자괴의 마음을 갖고 소년에 쏟는 정렬이 남다르다. 그렇듯 인간미가 넘치는 주인공이 본인도 모르는 유령이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 혼란이 일어난다. 열심히 판을 벌여 놓고 끝판에 "이상은 말짱 헛개비"라고 판을 엎어버리니 관람료 환불요구 소동이라도 일어날 법 하다. 그러나 극장문을 나서는 관객들은 배신감보다 "인간의 얼굴을 가진 귀신"에 대한 애정을 더 많이 느끼는 것 같다. 그들을 사로잡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요소는 섬뜩함보다 푸근함을 안겨주는 인간과 영혼의 교감일 것이다. 적은 돈으로 이렇듯 수준높은 심령물을 만드는 감독의 재주가 놀랍기만 하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