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투데이] 변화에 뒤처지는 국제기구

제프리 가튼 새로운 글로벌 경제질서의 특징중 하나는 정부나 관료조직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시장경제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는 11월말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되는 세계무역기구(WTO)총회에 참석하는 각국 대표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한다. 또 세계 모든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세계경제의 개방정도와 안정성 여부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IMF는 지난번 아시아나 러시아 지역을 혼란에 빠뜨렸던 금융위기와 같은 사태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각국이 빈곤에서 벗어나고 건전한 금융감독 시스템과 현대적인 기업지배구조를 정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WTO는 새로운 국제무역 자유화 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계시장을 더 개방하고 세계경제를 더 안정시키기 위해서다. 이 국제기구들이 추구하는 목표들은 나름대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이 기구들의 조직구성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만큼 탄탄하고 효율적인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기업들은 의사결정과정을 단축시키고 최신정보를 빨리 취합하기 위해 보고절차를 간략화하고 있다. 회사조직을 대고객서비스 위주로 개편하고 최상의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러나 국제기구들은 민간기업들의 이같은 추세와 거리가 멀다. 국제기구들의 의사결정과 사업추진 속도는 느리다. 고비용 저효율의 관료주의 타성에 젖어 있다. 급변하는 국제경제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할수 있는 구조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모범을 보이고 있는 인물이 있다. 월가의 총아였으며 카네기홀과 케네디 공연예술센터의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던 제임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다. 울펜손이 총재에 임명된 지난 95년 당시 세계은행의 운영상태는 엉망이었다. 의사결정과정이 5단계나 되는 등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고 한 프로젝트를 처리하는데 보통 12~15개월이 걸렸다. 다른 기구와 협력하거나 업무제휴를 맺는 일도 거의 없었다. 지식과 전문기술의 공유도 없었다. 울펜손총재는 취임후 고위관리 1백50명의 사표를 받는 등 대대적인 인사개혁을 실시했다. 고위관리중 35%가 해임되거나 다른 부서에 배치됐다. 중앙집중식으로 운영돼온 조직을 개편하고 고객위주의 경영방식을 도입했다. 세계각국에 퍼져 있는 사무실을 위성으로 연결시키고 인터넷 홈페이지에 경제개발에 대한 각종 자료를 정기적으로 올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자연보호기금(WWF)등 다른 국제기구들과도 협력관계를 맺었다. 또 직원들을 일류 경영대학원에 보내는등 재교육 훈련에 앞장섰다. 물론 이것들만으로 모든 문제가 게 해결됐다고는 볼수 없다. 세계은행이 IMF에 앞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울펜손 총재의 개혁이 성공할지의 여부를 단언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미국 예일대의 개발경제학자인 구스타브 라니스 교수는 "세계은행은 두가지 모습을 갖고 있다. 본부는 힘찬 비전을 추구하고 있으나 각국에 파견된 관료들은 변화에 발맞추지 못하고 사고와 행동이 정체돼 있다"고 말했다. 울펜손은 낡은 관료주의에 빠져 있는 이사진과 각국 대표들과 싸워야 한다. 울펜손 총재가 주도하고 있는 개혁의 성공 여부는 중요한 선례로 남을 것이다. 현재 국제경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우리들의 일상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IMF등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때 미국은물론 다른 나라 국민들도 생활의 안정을 기대할수 없다. 국제 기관들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날의 국제 정치역학 구도로 볼때 새로운 국제경제기구의 설립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득권을 누리는 나라들(이들은 모두 강대국들이다)이 새로운 기구의 탄생을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로선 기존 기구들을 효율적인 기구로 개혁하는 게 최선이다. 지난 10년간 IBM 모토로라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변해온과정을 살펴보면 한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어떤 기업이나 조직이 갈데까지 가 존폐의 기로에 서야 비로소 대대적인 혁신과 구조조정에 나선다는 사실이다. 현재 시대에 뒤떨어진 구조로 경쟁력이 약한 기업이나 국제기구들중 대부분이 아직 그 지경까지는 가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급변하는 세계경제 상황을 감안할때 이들이 그런 급박한 상황에 처할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 이 글은 최근 뉴욕 타임스에 실린 제프리 가튼 예일대 경영대학원장(전 미 상무차관)의 기고문을 정리한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