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골프일기] '어떤곳이 지상 최고의 코스인가'

고영분 "지상 최고의 코스"라는 말은 아무때나 쓰는 말이 아니다. 내가 산간오지의 그 코스에 "지상 최고"라는 칭호를 붙인 것은 두팀과 플레이한 이후였다. 나와 한팀이 된 세명의 사나이.머리에는 그레그렉노먼 모자가 빛나고 있었고옷도 클럽도 모두 신제품으로 반듯하게 무장한 사람들이 윗사람의 머리를 올려주기 위해 나온 것이다. 처음 필드를 찾은 사람이면 당연히 주눅들게 마련인데 업무상 관계가 필드까지 연장된 듯 이 팀은 달랐다. 볼이 뜻대로 가지 않자 상사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한수 더뜨는 것은 중간단계의 사나이. 윗분을 제대로 가르쳐드리지 않는다며 마지막 사나이를 윽박지르는 것이다. 급기야는 욕설을 퍼붓고 참다못한 그 마지막 사나이는 결국 얼굴을 붉히며 골프장을 떠나고 말았다. 험악하기 그지 없는 분위기에서 바라본 그 코스는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디봇 자국만 보였고 벙커는 쓸데없이 길었으며 해저드도 계산없이 푹푹 파놓은 듯했다. 난 "이런 골프장이니 저런 사람들이 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이튿날. 나는 노부부팀에 합세해 플레이할 수 있었다. 결혼 33주년을 기념해 플레이하고 있다는 그들. 노부부의 채와 신발은 33년이라는 세월만큼이나 낡아보였으며 세련과는 거리가 먼 의상이었다. 모든 것이 편해 보이는 사람들. 그런데 이분들이 쓰는 감탄사는 나를 의외로 당황케했다. 노부인의 티샷이 1백30야드를 조금 넘기라도 하면 노교수는 뛸 듯이 기뻐하며 예외없이 "러브리샷"을 외치는 것이었다. 젊은 나도 쑥스러운 "러브리샷"을 한없이 주고받는 그들의 풍경. 정말 사랑스러운 것은 샷이 아니라 그들이 함께 한 세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부부를 보자 전날 그렇게 엉망이던 코스가 평화로운 낙원으로 변해버렸다. 디봇 자국은 간데 없었고 긴 벙커와 곳곳의 해저드에서도 설계자의 심오한 의도및 철학이 느껴지는 듯 했다. 부동의 세계제일이라는 파인밸리에 가면 뭐하겠는가. 동반자에 따라 그 파인밸리도 당장 "분노의 황야"로 전락할 수 있는데... 그리고 플레이 분위기에 따라 3류골프장도 "지상 최고의 코스"로 둔갑할 수 있는데. 지상최고의 코스는 따로 없다. 비록 잭 니클로스가 손을 대지도, 저 유명한 피트다이가 설계하지도 않았지만 그 오지의 골프장이 노부부에게는 지상최고의 골프장일테니 말이다. 최고의 코스는 언제나 "누구와 치느냐"에 달려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