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창조적 재능의 전략적 배치 .. 복거일

복거일 요즈음 방송사들의 "일본 프로그램 베끼기"에 대해 말들이 많다. 텔레비전은 원래 모방이 많을 수밖에 없는 분야지만 우리 방송사들은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워낙 많이 사오거나 베끼고 있다. 일본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우리 방송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래서 방송위원회로부터 표절 판정을 받는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나오고 아예 표절 작품으로 비난을 받아 중단되는 경우까지 있다. 크게 보면 이 문제는 지금 모든 사회들에서 중요한 논점으로 떠오른 창조성에 관한 논의의 한 부분이다. 한 사회의 경쟁력이 궁극적으로는 학문, 기술, 그리고 문화에서의 창조성에 달렸다는 점이 널리 인식되면서 대부분의 사회들은 청소년들에게 창조성을 불어넣으려 애쓰고 있다. 시민들의 성품에서 창조성이 다른 특질들보다 상대적으로 낮다고 여겨지는 우리나라 일본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동아시아에서 그런 노력은 특히 활발하다. 따라서 우리 텔레비전에서 일본 프로그램들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은 그것들을사왔든 그저 베꼈든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우리 문화 산업의 창조성에 대한 걱정이 느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러나 우리 텔레비전에 일본 프로그램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방송 산업에종사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은 옳은가. 그리고 그들에게 보다 창조적이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인가. 이런 물음들에 대한 답은 그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이 여기는 것과는 달리 자명하지 않다. 창조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모든 분야들에서 늘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명제가 도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가의 기준이 되는 것은 창조성이 아니라 부가가치다. 어떤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주는 만족이 그것을 방송하는 데 들어간 비용보다 크다면, 그래서 가치를 만들어냈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아무리 그것이 창조적이라 하더라도 실패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살피면 일본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사오거나 베끼는 것은 좋은 전략임이 드러난다. 우리 방송사들처럼 자원이 적은 방송사들이 모든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스스로 만들려는 것은 좋은 방책일 수 없다. 따라서 외국 프로그램들을 들여오는 것은 당연한데, 일본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공급원이다. 일본과 우리 사이의 국력의 차가 워낙 커서 지식의 물매(gradient of knowledge)는 무척 싸지만, 두 사회는 인종과 문화에서 아주 가깝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거의 모든 면에서 바로 뒤쫓는다. 자연히, 일본에서 성공한 프로그램 가운데서 우리에게 맞을만한 것을 고르는것은 효과적이고 안전하다. 몇 해전까지만 해도 적잖은 우리 기업가들의 전략 구상은 일본에서 번창하는사업들이 무엇인가 알아보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 방송사들은 거의 정기적으로 일본에 그런 시장조사단을 보낸다고 한다. 특히 아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대신 일본 프로그램들을 대본으로 삼아 그것들을 개선해서 보다 낫게 만드는 것은 아주 실제적인 전략이기도 하다. 그런 전략의 다른 면은 우리의 제한된 창조적 재능을 비교 우위가 있는 분야들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전략이다. 생각해 보면 모든 분야들에서 창조적이기를 바라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전략이다. 여기서 강조돼야 할 것은 그런 창조적 재능의 배치는 정부나 "풍속의 감시자"로 나선 시민 단체들보다는 시장이 훨씬 잘하게 마련이라는 점이다. 이런 논의에서 꼭 나오는 것은 일본 문화의 침투를 경계하는 목소리다. 그러나 유독 일본 문화에만 거부감을 드러내는 태도엔 튼실한 근거가 없다. 세계성(globality)의 시대에 국적은 빠르게 뜻을 잃어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어차피 이 문제는 시청자들이 판단할 일이다. 남는 문제는 일본 프로그램들에 빚을 졌다고 인정하지 않는 우리 방송사들의태도다. 그것은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큰 잘못이다. 우리 방송사들은 좋은 일본 프로그램들에 대해 제값을 치르고 당당하게 모방하거나 번안해야 한다. 좋은 작품들을 모방하거나 빌리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어떤 학자나 예술가도 자신의 창조적 재능만으로 업적을 이룰 수는 없다. 이 점에 대해 차이코프스키의 얘기는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훌륭한 작곡가는 모방하지 않는다, 그는 아예 훔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