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성고백서 파문

여인의 정절을 죽음과 맞바꿀 정도로 중시했던 조선에도 탕녀는 있었다. 판서의 딸로 미색이 뛰어났던 설씨는 병약한 남편과 결혼한뒤 집안의 종,이웃집 선비들은 물론이고 제부와도 간통했다. 수십명이 넘는 설씨의 남성편력이 당시 얼마나 유명했던지 야사가 아니라정사인 "문종실록"에 까지 실려있는 1452년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5백47년이 지난 요즘 서울에서는 탤런트 서갑숙씨가 쓴 "나도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는 자전적 에세이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다. 성억압속 인고의 긴 세월을 뚫고 반기를 든것처럼 보이기도 할지 모르지만 이미 독자들은 이 책에서 새로운 이야기나 충격적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다. 한 여성 탤런트가 실패를 거듭하며 겪는 11명의 남성편력 끝에 한 남성을 만나 난생처음 섹스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는 궁상맞는 수기에 지나지않는다. 그가 굳이 전하려는 메시지가 있다면 "섹스는 영혼과 육체의 결합"이라는 것인데 요즘 그런것쯤은 이미 고전에 속한다. 한국에서도 성은 이제 "퇴폐적"이라거나 "은밀한"것이 아니다. 영화 TV 인터넷은 물론이고 서점가에서는 "섹스"가 넘쳐 흐른다.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섹스"는 "악수"정도로 여겨지고 있다. 책의 많은 부문이 성행위묘사로 채워져 있다해도 음란성여부의 기준인 성충동을 일으킬 소지도 없어 보인다. 책방에는 그보다 더 음란한 책이 셀수 없이 많다. 오히려 지레 겁을 먹은 검찰이 내사를 한다는등 언론이 호들갑을 떠는 모양새가 우습다. 그덕에 책은 많이 팔릴지 모르지만 멋도 모르고 호기심에 이 책을 사서 읽을청소년들이 더 걱정이다. 구성자체가 성관계의 실패소개에 치우쳐 있어 청소년들이 오히려 성에 대해 혐오감을 갖을 위험도 있고 너무 방종에 흘러버린 38세의 인생에서 별로 배울것도 없다. 탤런트 한 사람의 자전적 이야기에 이렇게 사회가 떠들석 한것이 그가 단순한 얼굴이 알려진 여자이기 때문이라면 우리사회의 남녀평등은 아직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