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21가지 대예측] (23) <11> 주문 생산되는 가족 [하]

"결혼이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생각해 봐야지요. 결혼 때문에 직장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구요. 그럼 혼자 살지요 뭐" 직장여성 서근영(36)씨. 그녀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노처녀라는 소리를 들은지가 벌써 10년에 가깝지만 "결혼 않느냐"는 질문에기분이 나쁜 표정은 아니다. 그녀는 혼자 산다. 부모 슬하를 떠난지도 벌써 21년. 그렇지만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일이 있고 친구가 있다. 왜 결혼에 목을 매다는지. 뒤늦게 유혹(?)에 넘어가 "노처녀 클럽"을 떠나는 친구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녀는 가정을 떠나 혼자 살면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수많은 젊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지는 않다. 혼자 살아가면서 "짧은 인생"을 만끽하는게 인생 철학이다. 아이가 키우고 싶으면 그때 가서 예쁜 여자 아이를 하나 입양할 생각이다. 나홀로 집에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영국 BBC방송은 오는 2010년이면 1가구 1인인 독신가구가 전체 가구수의 55%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05년이면 미국 인구의 절반이 독신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독신자들이 모두 미혼인 것은 아니다. 이혼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 결혼생활에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한 대학에서는 20세에서 35세에 이르는 남녀 가운데 절반은 이혼했으며 30%는 독신이라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나머지 20%만이 결혼을 했다는 얘기다. 20세기는 대가족 제도가 핵가족 제도로 옮겨가던 시대였다. 새로운 밀레니엄의 초기는 핵가족 제도의 붕괴가 새로운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핵가족 제도 붕괴는 유사 이래 사회 구성의 기초가 됐던 "가족제도"의 완전한 해체를 의미한다. 저명한 인류학자인 마거릿 미드는 "우리는 역사상 최초로 자유로운 개인을기초로한 제도를 향해 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과학저술가 피터 로리도 저서 "미래의 역사"에서 22세기초에는 가족제도가 종말을 맞게 되고 결혼과 섹스의 개념도 훨씬 자유로워져 윤리 규범의 담장이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노인과 청소년 문제 핵가족 제도의 붕괴는 여성들의 본격적인 사회활동으로 촉진된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핵가족 시대로 남아 있기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여성을 다시 부엌으로 되돌려 보내 "핵"이 가정에 남아 있게 해야한다"는 농담을 했다. 여성의 성취본능이 모성본능을 넘어서고 있는 사회적 추세가 핵가족 시대의 종언을 초래하고 있다는 얘기다. 결혼을 하거나 동거를 해도 "무자녀" 생활 방식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구속받기 싫다는게 그 이유다. 결혼하거나 동거를 해서 아이를 낳는다 해도 부모가 함께 이들을 양육하는 비율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이혼 별거 등으로 오늘날 미국 어린이 5,6명 가운데 1명은 편친의 슬하에서자라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노인과 청소년 문제는 핵가족 제도의 붕괴와 함께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젊은 시절 벌어 놓은 것이 없거나 보험을 들어 놓지 않았다면 노후 생활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제도가 새로운 밀레니엄에도 노후보장책으로 여전히 힘을 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사회민주주의를 주장해온 스칸디나비아 3국의 지갑은 이미 텅 비어 버렸다. 마약과 알코올 중독이 이들의 남은 인생을 갉아 먹게 된다. 사회가 노인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또다른 축인 청소년들의 문제는 더욱 커진다. 소외된 젊은이들은 사회가 자신들에게 역사적인 짐을 지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공공연하게 자신들이 속하지 않는 집단을 위협하게 된다. 폭력과 마약밀매, 극우 및 극좌집단이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생활공동체적 가족 혼자 사는 사회는 이율배반적으로 공동체 사회를 만들어낸다. 이른바 "생활공동체적 가족"이다. 일시적으로 고독감과 소외감이 증대되면 일정 기간 계약을 통해 가족을 만들 것이라는 얘기다. "가족이 필요하십니까. 최고의 가정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54세, 어머니는 52세, 할머니는 71세입니다. 생명공학자인 장남은 34세인데 28세의 흑인여성과 결혼해 같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 세자녀 가운데 18~23세의 대학생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계약기간은 1년입니다. 결코 후회는 없을것입니다" 미래에 출현할지도 모를 가족 모집 광고다. 더 큰 생활공동체 가족도 있다. 특정 스포츠를 좋아하는 모임이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방법이다. 서부시대를 동경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하자. 회장이 할아버지, 부회장이 할머니가 된다. 순식간에 "월튼네 가족"이나 "보난자"가 재탄생하게 된다. 아예 수백명으로 구성되는 "법인 가족(corporate family)"의 탄생도 가능하다. 이 또한 주문생산되는 가족이다. 21세기 문턱에서 사회학자들은 가족 제도의 변화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0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