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일찍 누린 '30조 혜택'의 결과

대우 계열사의 순자산 손실규모 39조7천억원, 금융기관들이 떠안게 되는 부담 31조2천억원. 하루가 멀다하고 몇천억원 몇조원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돈의 무게를 가늠하기조차 어렵지만 부실 책임을 덮어둘 수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대우 경영진들을 사법처리해야 한다느니, 부실하게 감사한 회계법인도 응징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도 강하다. 법과 규정을 어겼거나 고의적으로 부실을 초래했다면 책임을 지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하지만 곰곰 따져볼 게 있다. 과연 대우 부실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대우 가족을 보자. 대우 부실이 깊어가는 사이에도 10만명이 넘는 대우 식구들은 생계를 유지해왔다.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경영진들도 좋은 차를 타면서 혜택을 누렸다. 대우를 일찌감치 정리했더라면 수백 수천개의 협력업체들중 상당수도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다. 금융기관들도 대우 때문에 부실이 깊어졌다지만 바로 그 대우 덕에 돈도 많이 벌었다. 대우가 썩어들어간 것을 대부분 알던 작년 하반기의 일이다. 대우가 발행한 기업어음(CP)을 사면 다른 그룹 CP보다 금리를 3~5%포인트 더 받을수 있었다. 그래서 그 CP가 포함된 수익증권의 수익률은 다른 수익증권보다 높았다. 투신사들은 대우 CP와 회사채를 경쟁적으로 사들였다. 일반투자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감독기관도 이를 방관했다. 은행도 대우여신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보다 0.2~0.3%포인트 이자를 더 받을수 있었다. 불과 몇달전 모 시중은행이 대우 여신을 늘린게 달콤한 금리때문은 아니었는지 묻고 싶다. 지금에 와선 무모했었다는 평가를 받는 대우의 공격적인 해외진출도 한국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직전 일부언론은 대우가 내건 "세계 경영"을 한국기업이 본받아야 할 전형처럼 떠들썩하게 칭찬하기도 했다. 정부도 할 말은 없다. 자생력이 거의 없는 대우자동차에 삼성자동차를 얹혀 빅딜을 마무리하는 엉터리 전략을 짰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이 책임을 나눠지자는 뜻은 아니다. 몇명만 희생양 삼아 집중적으로 돌팔매질하는 것도 삼갈 일이다. 30조원이 넘는 대우 부실의 상당부분은 너무 일찍 누린 혜택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 책임은 없었는지 되돌아볼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