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다산경제학상 수상기념 논문] '경쟁정책의 회고...'

*** 경쟁정책의 회고와 앞으로의 과제 *** 정병휴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본격적인 경쟁정책은 1980년에 제정돼 1981년부터 시행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로서 우리나라에 도입되었다. 이 글은 먼저 전반부분에서 우리나라 경쟁정책의 전개과정을 지난날에 내가 걸어온 길과 관련하여 살펴본 다음, 후반부분에서 오늘날의 경쟁정책이당면하고 있는 앞으로의 과제를 몇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고찰하기로 한다. 시장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인 경쟁정책은 산업조직론에 근거하고 산업조직론은 미시경제론의 응용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1950년대의 한국의 경제학은 정책론적 서술에 그치거나, 미국에서 들어온 경제학도 대부분 국민소득 화폐금융 재정 국제경제를 중심으로 거시경제학적 관점에서 다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시경제학은 미개척 상태에 있었다. 한국에서 최초로 대학에서 미시경제학 강의가 개설된 것은 1960년인데 이때 쓰여진 교재가 A.W.Stonier and D.C.Hague의 "A Textbook of Economic Theory"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미시경제학은 이 책을 통해 1960년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고 볼 수가 있다. 그리고 1961년부터 제1차 5개년계획이 시작되는데 그 뒤로 학계 일부에서 독점의 폐해에 대한 관심이 일게되고 1964년에는 "공정거래 확보에 관한 입법제도연구"라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한국 최초로 공정거래법의 시안을 초보적인 형태로 포함하고 있다. 아마도 그 뒤로 산업조직론의 강의가 대학에서 시작된 것은 1967년부터 1년간 본인이 일본 오사카대학 사회경제연구소에서 산업조직론과 미국.일본의 독점금지제도를 연구하고 돌아와서 "유효경쟁론의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던 1969년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무렵부터 우리나라는 수차의 5개년계획의 실행으로 고도의 성장을 이룩하였으나 이른바 "독과점 문제"가 물가 등의 측면에서 제기되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로 1975년에는 "물가안정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물가를 정부가 직접규제함과 동시에 업자들의 담합행위를 막아서 경쟁을 촉진시킨다는 상호 모순되는 양면성을 가지는 것이었다. 정부는 1970년대 마지막에 이르러 이 법을 두개로 분리하여 본격적으로 경쟁정책을 도입,실시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이를테면 1979년말에 대통령경제과학심의회의에 제출된 공동연구보고서 "한국산업의 독과점구조와 규제방안에 관한 연구"는 한국산업의 독과점구조의 실상을 분석하고 그 분석에 근거하여 독립된 경쟁법 제정의 필요성과 그법에 담아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써 1980년의 공정거래법 제정에일정한 기여를 하고 있다. 마침내 1980년 12월31일에 임시입법회의에서 제정되고 1981년 4월1일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확보에 관한 법률"은 우리나라의 시장경제의 규율을 규정한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외국의 경쟁법에서는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력집중 억제와 재벌규제를 포함하는 공정거래법의 중요한 개정이 1986년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 경제력은 오히려 더 집중되고 그에 따라 정부와 재계 및시민단체들에서 재벌을 옹호하는 주장과 반대하는 주장이 물의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1992년에 출판된 "한국재벌부문의 경제분석"은 한국의 재벌부문의 경제적 실상을 경제력집중 소유구조 경영체제의 측면에서 실증적으로 분석한 다음,이러한 기초적 연구를 심화.확대하여 한국 재벌부문의 국민경제적 의의를 구명하고 나아가 재벌부문에 대한 합리적이고 실효성 있는 공공정책을 시급히 마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재벌들이 세계화와 기술혁신의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크게변신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위하여 지나치게 외부적으로 직접적인 간섭을 가하는 것보다는 내부에서 재벌이 개혁하도록 하는 조건을 조성하는 일이 긴요하다고생각한다. 그것은 단기적으로 우리경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기적으로 기업이 생존.발전하는 기본원칙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그 존재방식이 어떠하든 생산의 주체이고 소득의 원천이다. 우리나라의 경쟁정책이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글로벌리제이션 시대에 부응해야 한다. 최근에는 국내의 경제제도나 관행도 국제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되고 투명성과 국제적 조화를 요구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과 경쟁정책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리고 시장도 국내로부터 전세계로 국경을 넘어서 확대되고 있다. 종전과 같은 시장의 개념은 없어지고 각국은 하나의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있다. 종전과 같이 시장집중율 등을 기준으로 하여 기업합병이나 경쟁제한적 기업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시장의 경계가 없어지는 21세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경쟁촉진정책도 세계적 추세에 맞추어서 유연한 적응을 꾀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둘째로 규제완화와 경쟁정책의 대응을 들 수 있다. 경제규제가 완화 내지 철폐되는 경우에는 정부규제에 대신하여 경쟁의 메커니즘이 시장거래를 규율하고 종전에는 정부가 관리했던 신규기업의 진입이나 기존기업의 가격설정 등이 기업의 인센티브에 유도되어 자율적으로결정되게 되므로 경쟁정책의 중요성과 역할은 더욱 가중된다. 뿐만 아니라 정부규제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정부의 재량의 여지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전력 통신 교통 등의 공익사업분야에 있어서도 규제완화와 경쟁도입이 추진되고 있으나 현행 규제개혁은 규제철폐(deregulation)라기보다도 재규제(reregulation)인 경우가 많다. 새로이 경쟁이 도입된 경우에도 그 경쟁의 실태는 규제에 의하여 관리된 경쟁인 경우가 많다. 그런만큼 경쟁정책의 입장에서 규제완화와 관리된 경쟁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함께 앞으로의 규제개혁의 설계와 그 실행과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로 기술개발과 경쟁정책과의 관계이다. 경제학적으로 경쟁력(competitiveness)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술이 기업이나 국가의 국제경쟁력을 규정하는 요인으로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고 경영자나 정책결정자들 사이에서 기술능력을 높이는 방안에 관하여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이는 경쟁정책에 대하여도 새로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종래의 경쟁정책이 전적으로 자원배분의 정학적 효율성의 촉진에만 관심을집중해온 것은 사실이 아니지만 앞으로의 경쟁정책이 동학적 효율성 - 기술진보의 효율적 촉진 - 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방향에서 경쟁정책의 존재방식을 새롭게 구상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과 산업조직 및 산업정책과의 관련이나 경쟁관계에 있는 기업간의 공동기술개발의 효율성과 형평성 등을 분석해야 하는데 이러한 분석은 종래의 산업조직론의 정학적 분석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게임이론에 기초를 두는 새로운 산업조론이 대두한 것은 주목을 받아서 마땅하다. 근년에 표준화를 둘러싼 경쟁정책상의 문제와 정보화에 수반되는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관한 제도를 설계하는 것 등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표준화와 정보화의 문제는 네트워크 외부성에 의거하는 시장지배의 가능성을 경쟁정책의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순간적으로 교환.공유되는정보재의 특징을 살리면서 새로운 정보재를 생산하는 유인제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등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다. 이와 같은 도전적 과제를 전망하고 정보화사회에 있어서는 경쟁정책에 관해본격적으로 검토하는 일을 조속하게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경쟁정책은 근년에 발전된 경제이론의 성과를 수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독금법과 경쟁정책의 모국 미국에서는 경제학에 있어서의 새로운 이론이 적극적으로 반트러스트정책의 제도나 집행에 채택되고 거꾸로 경쟁정책의 실제의 경험이 경제이론의 새로운 발전의 계기가 되고 정책과 이론의 상호작용을 가져 왔다. 경쟁정책의 존재방식에 관한 대표적 논쟁은 시장지배적 행위에 대한 반트러스트법의 엄격한 적용을 강조하는 하버드학파와 정부규제에 의한 행정규제만 없다면 시장에 있어서의 자유로운 경쟁은 장기적으로는 최적의 상태를 스스로 초래한다고 주장하는 시카고학파의 첨예한 대립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의 미시경제학은 기업의 전략적 행동의 다단계게임이론에 의거하여 시장지배력을 가지는 대기업의 전략적 행동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후생을손상하는 하버드학파적 경우도 있다. 거꾸로 그렇지 않은 시카고학파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시장지배력의 경제적 공과가 플러스와 마이너스의 어느 쪽으로도될 수 있다면 경쟁정책당국은 시장의 구조에 대응하는 보편적 행동지침을 가질 수가 없게될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산업내의 기업의 수나 제품.기술특성 등 어떤 산업이 가지는 구조적특징에 의하여 경쟁정책을 집행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그 산업에 있어서의 전략적 경쟁수단이나 기업간 관계도 고려하여경쟁정책을 전개할 필요가 있게되기도 할 것이다.----------------------------------------------------------------------- [ 참고문헌 ] 1. (번역서) 정병휴, 1960, "신경제원론" 진명문화사(A.W.Stonier and D.C.Hague, 1957, A Textbook of Economic Theory, 2nd ed) 2. (공동연구보고서) 정병휴.오만식, 1964, "공정거래 확보에 관한 입법 제도연구" 서울상대 한국경제연구소 3. (논문) 정병휴, 1969, "유효경쟁논의 연구" "경제논집" 8권1호 4. (논문) 정병휴, 1971, "독점금지정책연구" "경제논집" 10권3호 5. (공동연구보고서) 정병휴.이승훈.조병택, 1979, "한국산업의 독과점 구조와 규제방안에 관한 연구" 대통령경제과학심의회의 6. (일서) 무라카미 마사히로, 1987, "아메리카 독점금지법-시카고학파의 승리" 유히카쿠 7. (양서) Jean Tirole, 1988, The Theory of Industrial Organization, MIT Press 8. (공저) 정병휴.양영식, 1992, "한국재벌부문의 경제분석" 한국개발연구원 9. (법령집) "97 공정거래관련 법규집" 한국공정경쟁협회 10. (일서) 고토 아키라.스즈무라 고타로(편), 1999, "일본의 경쟁정책" 도쿄대학출판회 [ 약력 ] 23년생 서울대 문리과대 정치학과 졸업 미 위스콘신대학원 경제학석사 서울대 경제학박사 전남대 상대부교수 서울대 상대교수 조선대 총장 한국산업조직학회장 한국개발연구원 이사장 한국경제학회장 서울대 명예교수(현) 학술회원(현)-----------------------------------------------------------------------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사가 제정한 제18회 다산경제학상을 수상한 정병휴서울대 명예교수가 수상을 기념해 쓴 논문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