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산업스파이

한 때 국가의 전유물이었던 정보수집이나 첩보활동이 지금은 기업이 국제경쟁에서 살아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돼 있다. 전세계의 대기업들이 첩자를 고용해 자국내 경쟁사나 외국 기업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일상사처럼 됐다. 정보활동이 민영화됐다고나 할까. 세계의 몇몇 대기업들은 중간규보 국가들의 정보망과 맞먹는 첩보망을 편성해 놓고 있다. 설사 정보요원을 고용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필요할 때는 컨설턴트나 사립탐정을 쓴다. 합법.비합법적인 모든 방법을 동원해 타기업의 비밀을 알아내려 한다. 살아 남아 큰 돈을 벌려는 욕심이 깔려있다. "상대방의 정보를 빼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는 "경제전쟁"의 논리만 강조되고 있다. "기업윤리"라는 말은 껍데기만 남은 꼴이다. "사랑과 전쟁과 장사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법"이란 말을 실감하게 된다. 산업스파이의 활동을 손쉽게 만들어 준 것은 첨단장비들이다. 선글라스.넥타이 핀에 부착하는 특수 카메라,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소형 도청장치, 무선전화나 팩스 전송파일을 가로 챌 수 있는 인터셉터까지 등장했다. 컴퓨터 인터넷망만 있으면 어디든 드나들 수 있는 "사이버 스파이"에게는 이같은 첨단장비도 필요없다. 국내기업간 산업스파이전의 효시는 지난 77년 부산의 모 조선소 간부가 경쟁사에 해저석유시추선 설계도를 빼내려다 발각된 사건이다. 스카우트를 내세운 균형적 산업스파이 수법에 속한다. 또 98년 반도체 첨단기술을 대만에 유출시킨 전자제품제조업체 간부, 연구원등 16명이 구속됐다. 당시 이들이 이미 빼돌린 정보의 질과 양은 1조2천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엊그제는 인터넷 증권거래시스템의 기밀을 경쟁사에 넘겨준 증권사 사이버 증권팀이 검거됐다. 국내 산업스파이의 첩보활동은 IMF사태이후 빅딜이나 기업 인수.합병(M&A) 등이 빈번해지면서 국제화돼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 국가정보원의 분석이다. 한국은 지금 외국 산업스파이들 타킷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산업스파이를 1백% 막기는 어렵다. 산업기밀보호의 관건은 결국 개별 기업들의 보안의식제고와 보안설비에 대한투자에 달렸다. 정부도 92년 부정 경쟁방지법을 보완해 산업 스파이를 처벌해 오고 있다. 하지만 징역 3년 3천만원이하의 벌금형이 고작이다. 처벌을 강화하는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