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믿을수 없는 IMF '변신'

최근 두 나라가 "소리 소문없이" 디폴트(대외채무 상환유예)를 선언했다. 지난주 초엔 파키스탄이, 이보다 한달여 앞서서는 "적도의 나라" 에콰도르가"빚을 못갚겠다"고 손을 들었다. 이들은 경제 규모가 작은데다 외환 위기가 잦아드는 시점에서 디폴트를 내서인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디폴트는 세계 금융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변신가능성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사실 파키스탄과 에콰도르는 당장 갚아야 할 부채가 많지 않아 IMF가 조금만지원했으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는 끝까지 지원하지 않았다. 채권자와 채무국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게 IMF의 입장이었다. IMF는 해당정부와 채권단이 졸라댔지만 "앞으로 위기국에 덜컥덜컥 지원하지않을테니 채권자들도 부실이 없게 알아서 잘 대출하라"고만 말했다. 이렇게 채권자들에게 위기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국제 금융체제가 휠씬 강화된다는 설명이었다. IMF가 이렇게 나오자 채권단은 죽을 맛인 모양이다. 내놓을 것 없는 해당 정부와의 외채협상이 순탄할 리 없다. 오죽 답답했으면 에콰도르 채권단은 IMF에 서한을 띄워 "채무조정협상에 한번만 참가해 달라"고 졸랐을까. 그래도 IMF는 여전히 "당사자 해결원칙"만 고수했다. 에콰도르와 파키스탄의 경우를 보면 IMF는 확실히 변했다. 그렇다면 이제 IMF의 변신을 완전히 믿어도 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직은 아니올시다"다. IMF는 이들에겐 "원칙"으로 일관했지만 브라질과 루마니아엔 "상황논리"를 대며 지원했기 때문이다. 브라질은 미국이 가장 많이 투자한 나라중 하나다. 그리고 미국은 IMF출연금의 18%를 대고 있는 대주주라는 점을 감안하면 IMF가 브라질에 즉시 지원금을 내놓은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동유럽의 소국 루마니아는 어떤가. 지난 5월 현재 루마니아는 파산직전이었다. 외환보유고 8억달러에 부채는 76억달러.게다가 5월말에 부채의 대부분인 단기채가 몰려있어 누가 보더라도 디폴트감이었다. 이때 IMF가 루마니아를 지원하고 나섰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고의 인접국인 루마니아는 나토군에게 필요한 전투기 비행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IMF와 미국에 "아무 것도 줄 것 없는" 파키스탄과 에콰도르만 IMF의 "시범케이스"에 걸린 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