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식민사관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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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사를 올바로 쓰실 용의가 있는지 없는지 그것부터 답변해 주세요" "저희들 말대로 역사연대를 끌어올리고 내리나" "괜히 이병도 자랑만 하고 앉았어. 이병도는 친일파 아닌가" 87년2월15~16일 이틀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한국상고사의 제무제"를주제로 개최했던 학술회의는 재야 사학자들의 소위 관학자들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했다. 주제발표자 한 사람이 고조선의 도읍지인 왕검성이 대동강유역에 있었던게 아니라 중국 하북성 요하유역이었다고 주장하자 "옳소"하는 탄성과 함께박수가 터져나왔다. 물론 상고사를 정립하지 못한 사학자들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사실과 사관을 혼동함으로써 흔히 감정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도저히 학설이라고 할 수 없는 억지주장도 수없이 많다. 결국 그들은 의견이 수용되지 않으면 고대사연구 학자들을 식민사관을 못 벗어난 친일파로 매도하는 버릇을 드러낸다. 국사학계에서는 최근 한 중진 교수가 저서에서 "고대사연구가 아직 식민사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 한동안 뜸했던 ''식민사관논쟁''이다시 일고 있다. 고대 사학자들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부정하는 이병도의 "통설"은 은연중 따르고 있기때문에 백제 신라 등의 고대사 5백여년에 공백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이 논지다. 10여년전 재야 사학자들의 주장과 줄기는 크게 다를 것도 없다. 고고학 인류학 사회학의 관점에서 보면 문헌고증을 위주로 하는 실증사학은 답답한 학문처럼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사학의 기본은 아직 실증이다. 감정적으로 역사를 왜곡 변조 미화시킬 수는 없지 않은가. 학계풍토도 이미 옛날과는 달리 고고학 등 인접학문의 연구결과를 무시할 수없다. 다만 시간이 걸릴뿐이다. 그런데 또다시 식민지사관을 내세우며 몰아붙이는 성급함이 학계가 상고사를정립하는데 어떤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국사학계의 반성도 필요하지만 진부한 ''식민사관 논쟁''은 이제 끝낼때도 됐는데 딱한 노릇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