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저널] '기업인과 교도소 담장'

"우리나라 검찰은 표적수사와 봐주기 수사의 명수다"를 영작해 보라. 한 신문사 사회부장이 수습기자선발을 위해 출제한 문제다. 잡음을 우려, 최종시험문제로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근사 답안으로 표적수사는 selective prosecution, 그리고 봐주기수사는 selective nonprosecution 으로 의역해 놓고 있었다는 후문이다. 누군가 "우리나라에서의 정치는 교도소 담장을 걷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단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기실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고 따라서 괘씸죄에 걸려 표적으로 떠오르기만 하면 그날로 교도소 안마당신세를 면키 어렵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인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의 중심축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인들까지 교도소 담장위에 노출되어 전전긍긍하게 됐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건축업자 치고 건축법을 어기지 않는 사람 없다"든가 "무역하면서 외환관리법 위반해보지 않은 사람 있느냐" 또는 "부지불식간에 탈세 안하고 기업해 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식 항변은 우리나라의 법과 규정이 얼마나 많은 기업인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는가를 대변하는 표현법들이다. 이같은 특수상황때문에 표적수사와 봐주기수사 시비는 당연한 귀결이고 부패는 규제를 먹고 산다는 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를 의식, 새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 를 국정목표로 내세웠지만 정말 좋아졌다고 믿는 기업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과거에는 가능했던 일조차 이제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들의 푸념이자 주장이다. 이런 맥락에서 대한항공사건도 곰곰 뜯어 볼 여지가 많다. 외환위기를 맞으며 우리나라 환율은 1달러당 800원대에서 거의 2천원대에 육박했다가 최근들어서는 1천2백원안팎에 머물고 있다. 절벽같은 환율변화에 적극 대응하려는 노력은 결국 경영자의 몫이다. 외화형태 거래가 많은 대한항공이 환 헤지(hedge)등 경영전략을 짜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적 몸부림이다. 더욱이 항공기는 대당 가격이 수억달러에 이른다. 환율변동에 따라 항공기를 구입해서 쓸 것인지 아니면 리스할 것인지 꼼꼼히 따져, 상황변화에 적극적이고 발빠르게 대응해야 살아 남을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항공이 설립한 아일랜드의 조세회피(tax haven)지대 현지 법인(KALF)은 정부가 오히려 그 활용을 장려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업이 풍전등화의 기로에 서 있는데도 그 탈출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외면한채 손놓고 앉아 있는 것은 종업원의 생활터전을 빼앗는 더 큰 범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원화가치가 1달러당 2천원으로 떨어져 소유했던 비행기를 팔고 리스로 돌려 경영을 합리화해보고 싶어도 양도소득세 등 후진적 국내조세체계에 묶여 원활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는 처지고 이로 인해 기업이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면, 종업원의 좌절과 원망의 화살은 누가 떠 안아야 하는가. 이같은 고정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을 터 주기 위해 적지 않은 선진국들이 조세회피지대을 열어 놓고 있을 뿐 아니라 많은 다국적기업들은 이를 적극 활용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같은 시각에서 보면 KALF를 탈세용 유령회사로 모는 자체가 글로벌시대의우물안 개구리식 사고로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다. 대한항공에 대한 수사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고 또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없는 우리로서는 섣부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다. 또 견물생심이라는 견지에서 보면 대한항공의 탈세의도가 전혀 없었으리라고보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실있는 기업을 지향하는 기업인이면 누구나 추구하는 일이고 또 경영자의 능력으로까지 평가받는 절세행위(tax avoidance)를 모두 탈세(tax evasion)로 몰아친 것은 아닌지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국내조세체계가 글로벌시대의 패러다임을 무시한 채, 탈세적발위주의 사고와틀을 고집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국제적 창의와 진취성을 꺾는 시대착오적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자는 뜻이다. 기업인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결여된 조세제도와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결코 양립하기 어려운 개념임에 틀림없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