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즐겁게] '캐시미어' .. 고급스러움에 편안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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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오 아르마니,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 비비언 웨스트우드 등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선택한 뉴밀레니엄 파이버는 무엇일까. 최첨단 테크노 소재도 최고급 모피도 아니다. 바로 1백% 천연섬유인 캐시미어다. 해외유명 디자이너들은 2000년 패션을 미리 앞서 발표하는 컬렉션에서캐시미어를 소재로 한 의상들을 앞다퉈 선보였다. 국내 의류매장에도 캐시미어로 만든 옷들이 쇼윈도의 앞자리를 일찌감치차지하고 있다. 캐시미어 옷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의 스타일에 따라 각양각색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고급스럽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캐시미어가 편안함(Comfort)과 고급스러움(Luxury)이라는 새 천년의 패션 화두를 이끄는 파이버로 조금도 손색이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유럽인들 사이에는 캐시미어 옷을 입는 것이 콩코드를 타고 여행하는 것이나 캐비어(철갑상어알)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걸치는 것과 비교될 정도로 삶의 가장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한 패션전문가의 말처럼 캐시미어는 호사스럽고 여유있는 삶을 대변하는 섬유다. 살갗에 와 닿는 부드러운 감촉과 흐르는 듯한 옷선, 아무것도 입지 않은 듯한 가벼움과 포근함, 그리고 따뜻함... 현대 섬유과학은 실크와 면, 울 등 자연섬유 모두를 화학소재로 비슷하게 재현해 냈지만 이런 캐시미어의 장점만은 흉내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캐시미어를 가장 먼저 입은 사람들은 중앙아시아의 왕족들이라고 전해진다. 중앙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은 바람과 일교차가 심한 척박한 땅 위에서 자라난산양의 털을 옷감의 소재로 삼았다. 특히 안쪽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털은 왕족들 몫이었다. 중앙아시아인들이 패시미나(Pashmina)라고 불렀던 이 최고급 캐시미어는 이후 실크로드를 통해 유럽에 전해지게 됐다. 유럽인들은 캐시미어의 수요가 늘어나자 더 많이 얻으려는 목적으로 영국과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산양을 키워 봤지만 몽골고원과 고비사막의 그것만큼 좋은 원사를 얻지 못했다. 산양이 자라는 환경이 혹독할수록 겨울의 추위가 심하면 심할수록 더 좋은캐시미어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왕의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던 패시미나는 지금도 가장 비싼 값에 거래되는 캐시미어의 일종이다. 사람 머리카락의 3분의 1 정도 굵기를 가진 섬세한 밀레니엄 파이버를 훌륭한 옷감으로 만드는 최고의 솜씨는 스코틀랜드가 보유했다는게 패션계의일반적인 견해다. 중세시대 50여가지 색실로 타탄을 만든 솜씨에서 알 수 있듯 스코틀랜드인들은 방적에서 편물 직조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캐시미어를 다루는 특별한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산양의 털을 하나의 천으로 완성하기 위해서는 보통 40개 정도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거의 모든 단계가 사람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캐시미어,메이드 인 스코틀랜드"가 세계 최고인 이유는 단순히 방적과 직조 노하우 때문만은 아니다. 이 지역의 수정같이 맑은 물이 최고급 원단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캐시미어는 원단생산 과정에서 물에 씻는 작업이 여러번 있으며 특히 스코틀랜드의 트위드 강이나 테비오트 강에 천을 담그면 마치 마술처럼 부드러움과 광택이 한결 더해진다"는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실제로 엔필(N.PEAL) 밸런타인(Ballantyne) 등 유명 캐시미어 브랜드들의 공장은 트위드강 둑에 집중돼 있다. 좋은 품질의 캐시미어 스웨터 한벌 가격은 약 70만원을 호가한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낼 비싼 가격이지만 그 희소가치를 떠올린다면 고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소재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캐시미어 산양의 수명은 7년 정도. 그나마 세살 정도 돼야 털을 구할 수 있다. 1년에 한번씩인 봄철에 산양의 몸을 빗질해 수확하는 섬유의 양은 마리당 4온스에 불과하다. 이후 몇차례 씻기고 염색되고 거친 털이 골라지는 과정에서 캐시미어의 양은 처음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결국 캐시미어 스웨터 한 벌에 7마리가, 코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 20여마리의 산양이 필요하다면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는 얘기다. 모직 계통의 옷을 입으면 몇 번 입지도 않았는데 보풀이 생겨 고민일 때가많다. 이는 원사의 길이가 짧고 꼬임이 단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실이 길고 접합이 단단할수록 옷의 보풀이 덜 생기는데 캐시미어 스웨터가 쉽게 낡지 않는 비밀의 열쇠가 이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