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엘리트 내모는 공직 환경

정부 각 부처가 공무원들의 이직 움직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재정경제부에서 유망한 신참과장과 서기관들이 삼성그룹등 민간분야로 옮기기 시작한데 이어 산업자원부에서도 "잘 나가던" 과장급이상 중견간부중 이직희망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국세청 세무공무원들도 대거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 소식이다. 정부의 한 국장급 관계자는 "공무원들의 동요와 사기저하가 이루 말할수 없는 수준"이라며 "누가 훅 불기만 해도 허물어질 듯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공무원을 그만두는 이유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낮은 봉급수준이 가장 큰 요인이다. 공무원봉급이 2년연속 삭감돼 올들어 5명중 1명이 퇴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다. 이른바 "부모장학금"이나 "부인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공무원을 할수 없다는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동안 많은 공무원들은 박봉속에서도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으로 버텨왔다. 그러나 정부의 역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서는 자부심과 책임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심각한 것은 축소된 역할마저도 제대로 할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이 공무원들의 이직을 재촉한다는 점이다. 사직을 결심한 한 공무원의 "사직의 변"은 이렇다. 장관은 1년이 멀다하고 바뀌고 그때마다 마치 역사를 뒤바꿀듯이 원대한 새로운 정책방향들이 제시된다. 언제는 물류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하루아침에 신산업으로, 또 부품산업으로 정책방향이 바뀐다. 공무원들은 또 장관이 더 높은 자리로 옮기는데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장관의 개인적인 취향까지 맞추기 위해 카멜레온처럼 변신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장관의 의중을 거슬렸다가는 "집에서 편히 쉬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여기에다 국회로 청와대로 불려다니다 보면 차분히 정책을 연구할 시간은 거의 남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실 공무원들의 이직 자체는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유능한 인재들이 정부에만 몰려있다는게 문제다. 정부와 민간부문의 인력교류는 상호 경험을 공유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국민을 고객으로 삼아 일하고자 하는 공무원들마저 제대로 일 할수 없는 환경때문에 떠난다면 그것은 보통문제가 아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