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코너] 프라하의 어두운 밤

프라하(체코)와 부다페스트(헝가리). 민주화를 향한 저항의 상징 도시다. 10여년전 구 소련의 붕괴는 이 두 도시의 자유화 운동에 영향받은 바 컸다. 공산주의에서 자유주의 국가로 탈바꿈한 이들 나라는 이제 관광 명소로 변모했다. 잘 보존된 갖가지 건축양식과 저항의 현장들이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것. 두 도시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연간 체코를 찾는 외국인이 약 1억명, 헝가리를 방문하는 사람이 4천5백만명에 이른다. 관광객 수가 자국 인구(각각 1천여만명)보다 5~10배 많다. 때문에 관광수입은 이들 나라 경제에 엄청난 플러스 효과를 주고 있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가 자유 평화의 도시라면 뒤셀도르프(독일)는 "전장"이었다. 뒤셀도르프 메세구역에서 최근 열린 국제의료기기박람회(MEDICA 99)는 기술 전쟁터였다. 60개국 3천여 기업들이 제각기 첨단 기술을 무기 삼아 코스트 다운의 치열한생존경쟁을 펼쳤던 것. 지멘스 GE 필립스 등 초국적 기업들이 오스트리아 벤처기업인 크레츠사와 초음파진단기를 놓고 격전을 벌였다. 그 현장에는 한국의 중소.벤처기업들도 41개사나 참여했다. 전시비용조차 마련하지 못해 돈을 빌려 출품한 벤처기업, 대리급 여직원 1명이 나와 홍보전을 펴는 신생 회사도 있었다. 이들은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지피지기하느라 애썼다. 프라하와 부다페스트의 밤은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썰렁하다. 오후 4시면 오피스 빌딩들의 불빛이 꺼져 도시가 무기력해진다. 관광지 인근의 유흥가에만 사람들이 붐빌 뿐이다. 삶의 의미를 잃어 자살하는 사람이 갈수록 는다고 한다. 꿈과 의지의 상실 때문이다. 문득 갈수록 밝아지는 서울의 밤이 싫지 않게 느껴졌다. 밤새워 연구개발하는 벤처기업과 벤처빌딩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비전이다. 산업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 갈 길은 분명하다. 바로 "테크노"다. 테크노 우위를 통해서만 세계인을 사로잡을 수 있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진정한 자유와 평화는 전쟁 한가운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