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귀농정책, 발상전환 필요..복거일 <경제평론가>

요즈음 귀농자들의 탈농이 늘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농사를 지으려고 도시에서 농촌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그들이 농촌에서 태어나지 않았거나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도 모두 귀농자로 불린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IMF 관리 체제 아래서 귀농자들은 갑자기 늘어났고 자연히 탈농자들도 많아졌다. 귀농자들은 지난 96년에 2천60명이었고 97년엔 1천8백41명이었으나 98년엔 6천4백9명으로 늘었다. 탈농자들은 97년에 1백58명이었으나 98년엔 4백93명으로 늘어났다. 귀농과 탈농 사이의 시차를 생각하면 올해와 내년엔 탈농자들이 크게 늘어날것이다. 탈농의 직접적 원인은 영농의 실패다. 우리 경제가 회복돼서 도시의 흡인력이 다시 커진 것도 탈농을 촉진하고 있다. 영농의 실패는 주로 영농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했거나 준비가 허술했거나 경험이 부족했거나 영농에 필요한 자본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데서 나온다. 귀농자들은 대부분 농촌과 농사의 실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한 채 환상을 갖고농촌으로 들어가므로 실패확률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귀농자들의 그런 탈농은 당사자들에겐 물론 큰 불행이다. 그것은 두 번의 실패(도시 생활에서의 실패와 농촌 생활에서의 실패)를 뜻하므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탈농자들이 겪는 괴로움과 어려움은 클 수밖에 없다. 해마다 몇 천 명의 사람들이 관련된 일이므로 그것은 또한 큰 사회적 비용을뜻한다. 시급한 것은 귀농 희망자들이 농촌과 농사에 대해 품은 환상에서 깨어나도록돕는 일이다. 도시 생활에 지친 사람들에겐 농촌과 농사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도 흔히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른다. 하물며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랴. 따라서 농사가 기술적으로 어렵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기업적으로 위험하다는사실을 귀농 희망자들에게 알려주는 일은 긴요하다. 농부는 농토라는 복잡한 기계를 다루는 숙련 노동자들로 그가 갖추어야 하는지식과 기술은 엄청나다. 성격이 다른 작물들과 가축들을 보살피고 경운기와 같은 농기구들을 쓰는 일이 한결같이 간단하지 않은데다가 천기를 살펴서 날씨를 예측하는 기술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기계화가 많이 되었더라도 농사엔 아직 힘든 육체적 노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귀농 희망자들은 농부가 자신의 판단과 책임으로 기업을 경영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영농의 실패만이 아니라 과잉 생산으로 인한 가격 폭락의 위험까지도 고스란히 자신이 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에서 살던 사람이 이내 성공적 농부로 변신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만일 정부가 귀농자들을 위한 상담소를 운영해 귀농에 필요한 자료들을 제공하면서 농촌과 농사의 실상도 함께 알린다면 적잖은 귀농자들이 농촌과 농사에 대해 품은 환상에서 벗어날 것이고, 개인적 고통과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그저 귀농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이런 정책엔 위에서 든 문제 말고도 훨씬 근본적 문제가 있다. 지금 우리 농업 인구는 전체인구의 11%가량 된다. 농업 선진국들의 농업 인구는 대체로 5% 안팎이다. 따라서 우리의 농업 인구는 가까운 장래에 절반으로 줄어들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기계화를 통한 생산성의 향상, 영농 기술의 빠른 발전, 기업농과 계약 농업(contact farming)의 증가와 같은 요인들에다 눈앞에 다가온 농업 시장의 개방까지 겹쳐서 우리 농업은 빠른 구조조정을 요구받고 있다. 실은 이것은 세계적 추세다. 가장 중요하고 앞선 농업국인 미국의 경우 1950년 이후 농업 생산성은 갑절로 늘어났고 그런 사정을 반영해서 농가 수는 5백60만 가구에서 2백20만 가구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지금도 해마다 수천 가구들이 농사를 그만두고 있다. 그리고 개인 농장들도 거대한 농업 기업들과의 계약 농업에 점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축산업은 그러하다. 그래서 개인 농장들은 거대한 종묘 회사, 곡물 회사, 낙농 회사들의 하청 업체들로 바뀌어가고 있으며 개인 농장의 장래는 없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는 판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정부의 귀농 장려 정책은 문제를 오히려 크게 한다는 것이드러난다. 합리적 정책은 귀농을 되도록 억제하고 지금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다른 산업들로 더욱 쉽게 이행하도록 돕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발상의 전환은 무척 힘들다. 무슨 일이 있어도 농업의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귀농자들의 탈농을 보도한 신문 기사들도 한결같이 귀농자들이 영농에 실패한 까닭들 가운데 하나는 정부의 너무 작은 지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농업 시장의 추가 개방이 통상 외교의 주요 현안이 된 지금 농촌과 농업에 관한 차분하면서도 활발한 논의는 긴요하다. 그런 논의를 통해서 경제 원칙에 따른 정책이 세워져야 농업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고 사회적 비용을 가장 적게 할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