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경영학자의 자기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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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이 스스로의 자질개발 노력이 부족하다" "기업에 대한 사례연구를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 등 학계가 너무 경직돼 있다" 29일 대한상공회의소 2층 회의실. 백발의 노교수는 국내 경영학계에 대한 비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었다. 황일청 전한양대 교수의 주제발표는 외형적으로만 성장했지 여전히 현실과는동떨어진 국내 경영학 교육 전반에 대한 질책이었다. 한국 경영학계는 지난 50년대 이후 관련학과 학생 수가 전체 학부대학생의12%나 차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경영학과가 없는 대학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경영학과 출신들을 다시 재교육시키는데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아예 기업내 자체 교육기관까지 설립하고 있다. 황 교수는 "교수에 대해 사회가 과대평가하고 있고 교수 자신들도 스스로에 대해 과신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이어 발표자로 나선 김인수 고려대 교수의 지적도 신랄했다. "우리 경영학계를 주도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그들이 박사학위 때 집중적으로 훈련받았던 계량적 분석기법만 국내에 도입하고 있다" 한국 경영학의 수준이라는 것이 겨우 선진국 이론을 들고 들어와 한국기업에도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국기업의 경영기법이나 관행들에서 "선례 (best practice) "를 찾아내야만 한국적인 이론이 개발될 수 있고 우리 기업에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슷비슷한 학회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 학술활동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외국 학자들이 한국경제에 대해 내뱉는 한마디에 법석을 떠는 것을 두고 한국인의 사대주의적 성향이라고 꼬집는 학자들도 있다. 학자란 현실과 일정하게 거리를 두어야 한다며 의연함을 고집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날 세미나는 외환위기에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할 국내학계가 너무도 자기비판에 인색하다는 인식에서 마련된 것이다" 행사를 준비한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의 설명이다. 국내학계의 자기비판이란 자리가 워낙 생소해 참석자 섭외에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의욕적으로 마련된 자리를 20여명의 노학자들만이 채운 한산함은 아직도 스스로에게 채찍을 들 겸허함을 우리 풍토에서 기대하는 것이 시기상조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1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