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준의 골프백과] 미국 PGA 이야기 (9)

1920년 테드레이가 US오픈에서 우승한 후 1965년 게리 플레이어가 우승할 때까지 US오픈 트로피는 44년간 미국인들의 손에 지켜지고 있었다. 한편 브리티시오픈의 심볼이었던 "챔피언십 챌린지컵"은 어떠했는가? 1923년 한해를 제외하고는 1933년까지 계속 미국인들의 차지였으니 당시 미국 골프의 상승기를 말해준다. 이즈음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고 캐디생활에서 시작하여 수십년간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진 사라젠(1902~1999.5)이란 골퍼의 이야기가 있다. 프랜시스 오우멧이 영국의 거장 해리 버든과 테드 레이를 US오픈 연장전에서이기고 모든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1913년에 사라젠은 가난한 집안을 돕기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11세의 어린나이로 캐디가 된다. 가난과 멸시는 항상 그를 괴롭혔지만 "골프만이 나의 인생"이라는 불타는 그의 집념은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20세의 나이에 US오픈에서 우승하고 그 다음해는 당시 미국 골프계의 1인자였던 월터 하겐을 제치고 정상을 지켰다. 사라젠은 세계 4개의 메이저 타이틀(그랜드슬램)을 차지한 4인중의 한명이다. 그의 기록은 2개의 US오픈, 3개의 US PGA챔피언십, 마스터스, 브리티시 오픈우승외에 라이더컵의 멤버였으며 수십개의 대회를 석권한 데서도 잘 드러난다. 사라젠은 한참 뒤에 쳐져 있다가 별안간 선두로 나타나 예상을 뒤엎고 우승을 한 경기가 여러개 있다. 1922년 US오픈때는 마지막 라운드를 68타로 우승했고, 1923년 US오픈때도 마지막 28홀을 100타로 막아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정상에 등극했다. 더 유명한 것은 1935년 마스터스 대회. 4홀을 남겨놓고 3타 뒤지고 있었는데 15번홀(파5)에서 "더블 이글"을 통해 동점을 만들고 다음날 연장전에서 당대 세계 최고의 장타자(350야드)인 크레그 우드를 무릎 꿇렸다. 어려웠던 그의 어린 시절은 그를 어떠한 역경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승부사로 만들었다. 이런 태도는 현재 우리 한국프로골퍼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1930년대 사라젠은 골프사의 혁명같은 샌드웨지를 여러번의 시도끝에 그의 차고속에서 만들어 냈다. 지금은 대중화가 되어 그 유래를 모르는 골퍼가 많지만 그 획기적 샌드웨지의 발명은 세계 골프사에 한 획을 긋는 사라젠의 위대한 업적이다. 그는 1940년 미국 PGA명예의 전당에 초대멤버(Imaugural member)가 되고 1974년에는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