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고요한 명동성당

1901년 제주도 사람들이 천주교도들과 유혈충돌을 일으켜 7백여명이나 죽은 일이 있다. "신축교난"이란 사건이다. 이 사건이 매듭지어진뒤 기록으로 남은 우리 관리와 프랑스선교사가 맺은 "교민화의약정"을 보면 당시 프랑스신부들이 교회 경내에 죄인을 숨겨둔 것이사건의 발단이 됐다. "앞으로는 교회가 범인을 숨길 수 없다"는 조항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비오 베네딕트 법전"에는 "교회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범법자이거나 국법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도와줘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또 바티칸공의회 선언에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 요구할 때는정치질서에 대해서도 교회가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조항도 명시돼 있다. 교회의 존재이유중 하나가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데 있는 탓이다. 서울 명동성당처럼 이런 교회의 역할을 충실하게 실천해온 곳도 드물것 같다. 76년 "민주구국선언문"사건이후 민주화의 성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명동성당은 6.29 선언이후에는 각종 반정부 농성과 집회의 상징처럼 알려져왔다. 하지만 초기에는 공권력이 미칠 수 없는 양심세력의 도피처로 인식됐던 것이점차 성역을 역으로 이용하는 농성자들이 늘면서 집단이기주의의 희생양으로 변해 버렸다. 연일 장기농성이 이어져 시민들의 빈축을 샀다. 성당과 농성자들의 반목까지 생겨 지난 95년 한국통신 노조간부들의 장기농성때는 1백여년만에 처음 경찰이 투입되는 이변도 생겼다. 성당 고유의 전례기능까지 위협당하자 지난해에는 신도들이 농성자들의 천막을 강제로 철거한 일도 있었다. 1년 내내 각종 농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던 명동성당이 지난 20일 한총련이철수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처럼 조용한 성당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성당측은 앞으로도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겠다는 약속은 확고하지만 집단이기주의적 장기농성은 금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집단이기주의적 장기농성은 없어졌으면 한다. 오랜만에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고요한밤 거룩한밤"을 들으며 영광 평화 은총 사랑이라는 성탄의 메시지를 조용하게 음미할 수 있을것 같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2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