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벤처열풍' 헛되지 않도록..박영균 <경제부장>

새해에는 누구나 덕담을 한다.

새 천년, 새 세기를 맞이하는 희망의 말들이 많지만 새해 덕담으로는
"부자가 되라"는 게 아마도 가장 인기를 끌것 같다. 주식이나 코스닥 벤처가 연말연시의 최대 화제거리였던 것만 봐도 그렇다.

지난해에는 엄청난 돈바람이 불었다.

새 거부들이 속출했다. 미국의 포브스지는 최근 거부들의 면면을 소개했다.

관심을 끄는 재력가들은 단연 정보통신 분야의 젊은 기업가들이다.

5위권내에 무려 3명이나 포진하고 있다. 1위인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4위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과
5위에 떠오른 일본 히카리 광통신의 시게다 야스미쓰 사장이 그들이다.

이중 시게다 사장이 눈길을 끈다.

그는 약관 34세의 벤처기업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파친코에 빠져 2년 연속 대학입시에 실패한 뒤 3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으나 몇 달만에 그만둔 인물이다.

히카리통신을 세운 것은 불과 23세 때.

판사인 부친과 형이 반대했으나 벤처기업인이 되겠다는 그의 고집을 꺽지
못했다.

시게다 사장의 재산은 현재 250억 달러에 달한다.

빌게이츠의 850억 달러에는 미치지 못하나 빌게이츠를 꺽는 게 그의
목표라고 한다.

비단 외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떼돈을 번 사람들 얘기가 손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식투자로 돈 번 사람, 벤처기업을 만들어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갖게 된
청년기업인들이 화제를 뿌렸다.

너도나도 벤처행 열차를 타고 있다.

대덕 연구단지의 과학기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고시를 패스한 경제관료들
도 벤처기업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대기업에 근무하던 회사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심지어는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들이 벤처를 차리기도 한다.

이대로 가면 중학생 고등학생이 아예 학업을 그만두고 회사를 차리겠다고
나서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그 덕분에 코스닥 시장은 벤처기업에 투자하려는 투자자들로 항상
만원이다.

코스닥은 만성적인 수요초과, 공급부족 현상을 보이고 있다.

우량 벤처기업은 주가가 액면가의 수십배에 이른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려하는 소리도 적지 않다.

사회 전체적으로 "돈바람"에 휩싸였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런 우려는 다음의 몇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차원일 수 있다.

그냥 평범한 샐러리맨들의 입장이라 할만하다.

땀 흘려 일한 댓가로 월급봉투를 받는 그들의 눈엔 상당수의 벤처기업들이
별 노력도 없이 너무 큰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런 상대적인 박탈감은 부의 형성과정에 대한 의심과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과거에 경험으로 볼 때 우리나라 풍토에서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하고 미심쩍게 보는 것이다.

또 정부나 수사당국에도 삐딱한 시각이 없지 않다.

스톡옵션 비과세한도를 낮추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와 무관치 않다.

물론 일부의 벤처기업에선 그런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벤처기업들의 기술수준이나 기업가치가 어떤가는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단 뭔가 문제가 있다고 보는 선입견도 문제다.

또 코스닥 열풍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너도나도 일확천금을 노리고 차분하게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도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벤처기업 러시에서 새 희망의 조짐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기업가 정신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벤처기업에 도전하는 모험정신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창업열기는 경제를 살아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코스닥이 너무 과열이 아닐까하는 걱정을 하고 이를 정부가 안정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당국자들의 지나친 간섭이다.

학생들이 공부를 안하고 돈 버는 데만 몰두한다고 혀를 차는 교수님들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는 벤처기업인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실패하고 또 다시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된다.

우수한 경제관료들이 관직의 옷을 벗어버리고 벤처기업인으로, 금융인으로
변신하는 것도 오히려 권장해야할 일이 아닌가.

정부가 앞으로의 일을 염려해 이런 저런 규제를 남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걱정스런 일이 아닐수 없다.

과거의 지나친 규제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을 만들어냈다.

자율적인 환경이 만들어졌는데도 정부의 지시와 보호만을 바라는 경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정부나 기업은 벤처 열기가 사그러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한다.

시중에는 선거가 끝나면 정부가 긴축정책을 펴고 그렇게 되면 주식 코스닥
벤처 열기가 시들해지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돌고 있다.

정부는 되레 이런 걱정들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할 때다.

선거에서 여당이 이기건 지건간에 경제가 활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선 누구에게나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너는 안된다"고 말하지 말자.

누구든 기업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자.

그런 열린 사회야말로 박탈감을 어루만질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규제로서 기회를 박탈하는게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할 일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