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7일자) '200%' 안에선 자유로워야

금융감독위원회가 새해에도 부채비율 2백% 유지 등 재벌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일부 재벌의 양적팽창에 우려를 표시한 것과
관련해 한국중공업이나 가스공사 등 민영화하는 공기업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사업분야로의 확장에 제동을 걸 것이라는 보도다. 정부가 강력히 추진해온 부채비율 감축은 대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은
것이 사실이다.

은행들을 통해 채무자인 재벌들과 재무구조 개선협약을 맺는 방법으로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무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그 불가피성을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부채비율을 줄이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국내 기업의 헐값 매각과 과도한
외자유입을 불러일으켜 원화의 가치가 불필요하게 높아지는 부작용이 없지
않았음에도 재벌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바람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의 과도한 차입경영이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요 사유 중의 하나였다
는 점도 이런 컨센서스 형성에 상당히 기여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미 정해진 부채비율의 기준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방침
역시 당연하다고 하겠다.

대기업들이 차입을 통해 핵심 역량과 무관한 분야에 문어발식으로 진출하는
것을 걱정하며 연구개발 투자에 힘쓸 것을 주문한 대통령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채비율을 제대로 맞춘 기업들이 다른 기업과 인수합병을 추진하거
나 또는 민영화하는 공기업을 인수하는 문제에 관해 정부가 간섭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얘기다.

부채비율을 지키는 범위에서 독자적이든 또는 컨서시엄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든 공기업 인수에 나서는 것은 전적으로 그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자본 뿐 아니라 수많은 인재들을 보유한, 경쟁력이 가장 강한 집단을 공기업
민영화에서 배제하겠다는 것은 외국 기업에게만 팔겠다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끊임없이 확대재생산을 추구해야 할 기업에 대해 새로운 영역의 투자 자체를
못하도록 한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의 지적대로 정부는 더 이상 기업에 무엇을 해라 말라 해서는 안된다.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든,공기업을 인수하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이뤄지도록 하면 된다.

정부의 기능은 객관적이고 투명한 규칙을 정하고 이것이 잘 지켜지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어기는 자를 단호하게 제재하면 된다. 공직사회의 체질로 볼 때 혹시라도 대통령의 언급이 정부의 초법적조치 등
과잉대응을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