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트 홈] (나의 Best 'Collection') '병풍/머릿장'

진태옥씨는 세계가 인정한 톱디자이너다.

"20세기 세계 패션계를 이끈 인물(영국 파이돈 출판사 선정)", "바이어가
뽑은 베스트 디자이너(프랑스 주르날 디 텍스타일지 선정)" 등 1979년
파리에 진출한 이후 세계 패션계는 그에게 끊임없는 찬사를 보내 왔다. 진태옥씨는 또 가장 한국적인 디자이너다.

흐르는 듯 유연한 곡선과 단아한 직선, 장식을 배제한 심플함, 절제된
테크닉과 독창성 등 진씨의 옷에는 한국 고유의 정서가 잘 담겨져 있다.

해외 언론들도 진태옥만의 향기에 반했다. 이처럼 한국적 감성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답게 그는 열폭짜리 병풍과 머릿장
을 제일 아끼는 소장품으로 소개했다.

"젊은 시절에는 "진태옥 집에 가면 골동품가게보다 앤틱가구가 많다"고
소문날 정도로 수집광이었지요"

고가구와 소품이 있다면 다리품을 아끼지 않고 달려갔던 덕분에 몇년전만
해도 여기저기서 끌어모은 앤틱컬렉션으로 집안이 가득차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전 서울 한남동 집이 큰 화재를 입으면서 소장품 대부분이
소실돼 버렸다.

"처음에는 병풍도 타 버린줄 알았지요. 그런데 청담동 사무실 창고에
병풍이 있는 거예요. 생각해 보니 패션쇼를 준비하면서 병풍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는 마음에 사무실로 옮겨 놨던 겁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남은(?) 병풍은 이제 진태옥씨에게 더없이 가까운
친구와 같다. 유명 화가의 낙인도 없고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물건이지만
진씨와는 30년을 동고동락했다.

이전의 소유주가 40년 정도 갖고 있었다고 하니 그 나이는 적어도 70세
이상이라고 짐작된다.

폭마다 그려진 그림은 노래하는 새 두마리와 풀 꽃 나무 바위 등 소박한
민화의 전형이다.

지난 40년간 그의 머리맡을 지켜온 "머릿장"도 베스트 컬렉션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진씨는 "머릿장은 여러개의 문갑속에 버선이나 비녀같은 소품을 넣어두는
작은 옷장으로 옹주장 공주장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칠이 벗겨지고 부분부분 문고리가 떨어져 나갔을 정도로 낡았지만
천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톱디자이너 진태옥씨의 애장품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