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벤처기업과 룸살롱 .. 이상성 <사장>

이상성

최근 신문에 서울 강남지역의 룸살롱들이 벤처기업 경영자들로 채워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벤처기업을 경영하는 필자에게도 벤처기업인들의 이러한 행태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지적의 요지는 "벤처기업들에 대한 투자자금이 불건전한 곳에서
비생산적으로 소비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필자는 룸살롱을 들락거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벤처기업인의 한사람으로서
나름의 변명을 하고 싶다. 기술 제품 시장 등은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할 핵심 요소들이다.

이런 요소들을 확보하는 과정을 보면 결국 "사람 간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금의 벤처기업처럼 서로 유사한 기술과 제품 등을 가지고 치열한
시장확보 전쟁을 벌일 때는 더욱 그렇다. 인력과 자본이 부족한 벤처기업이 자기 혼자의 힘으로 경쟁을 극복해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문에 외부에 광범위한 협력업체들을 만들어내고, 급격한 시장변화와
치열한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나 기업간의 협력이란 단순히 사업상의 이해관계가 일치된다고
성립되는 건 아니다. 경영자들이 서로 이해하고 믿음을 가질 수 있을 때에만 강력한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따라서 서로의 심중을 헤아리고 인간적인 믿음을 쌓기 위해 술자리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파티 등과 같은 건전한 자리가 국내에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과격한 음주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에서 사업적으로 열등한 지위에 있는
벤처기업들이 기성의 문화를 자기 힘으로 단기간에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기존 문화 등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생존을 위해 밤 늦게까지
술자리를 지켜야 하는 벤처기업 경영자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대다수 벤처기업인들은 아직도 직원들과 밤 늦게까지 사무실의 불을 밝히고
있다는 점도 인식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