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5일자) 공천 반대자 발표와 정치발전

총선시민연대가 어제(24일) 발표한 67명의 공천 반대자 명단이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자민련의 김종필 명예총재와 박준규 국회의장 등 3선 이상의 중진 의원들이
34명이나 되고 특히 부정부패에 연루된 사람들이 40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영향력이 가히 폭발적이다. 여야의 지도부가 공천과정에서 참고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므로 정치판의
대대적 물갈이를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치권이 이미 자체적인 개혁과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유일하게 개혁의 무풍지대에 머물며 기득권 지키기에 안주해 왔다는
점에서 총선연대의 취지를 나무라기 어렵고 그 당위성에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이들의 활동에 공감을 표시했을 것이다. 경실련의 낙천 및 낙선 대상자 명단 발표 이후 80% 이상의 국민들이 시민
단체에 열화같은 지지를 표시하며 성원을 보내는 것도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을 반영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우선 선정의 기준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하더라도, 또 고민을
거듭하며 수많은 검증을 거쳤다 해도 총선연대가 스스로 인정했듯 우리
사회의 왜곡된 검찰권 행사와 사법질서를 감안할 때, 그리고 시민단체의
자료수집 능력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명단의 엄정함과
공정성을 1백% 인정받기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명단에 포함된 사람 가운데 절대적으로, 또 상대적으로 억울한 사람이
없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로 상당수의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 명단에 반드시 포함됐어야 한다고
믿는 인사들이 의외로 상당수 빠진 점도 석연치 않고 시민단체의 이런 활동이
선관위에 의해 이미 실정법 위반으로 결론이 났다는 점도 개운치 않다.

경실련의 부적격자 명단발표 이후 전국적으로 금품수수와 위장 단체 등에
의한 사전 선거운동이 난무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선운동을 법으로
규제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에 따라 선관위의 단속이 힘을 잃고 주춤
거린다는 보도 역시 결코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시민단체의 순수성을 믿고 있고 또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법 테두리 안에서의 "시민 불복종 운동"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는 생각하지 않는다.

또 공천반대자 발표가 꼭 우리나라의 정치발전을 가져온다고 확신하기
어려운 대목도 없지 않다는 걱정이 든다. 유권자들이 진정 현명한 선택을 함으로써 우리 정치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