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정정만의 남성탐구) '남성용 피임약'

다른 동물과 달리 발정기를 극복한 인류.

종족보전의 숭고한 목적이 아닌 즐거움만을 위한 섹스를 추구하기 시작한
이래 임신은 쓰디쓴 열매로 다가온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임신을 배제한 섹스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가장 오래된 피임 방법은 질외사정.

성서 창세기에 보면 오난은 형이 죽은 뒤 형수에게 장가들었지만 잠자리
에서 정액을 바닥에 쏟아 임신을 피하려 했다. 오난의 피임법이라 해서 질외사정을 "오나니즘(Onanism)"이라고 부른다.

정액을 배출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어 지금은 주로 "자위행위"의 뜻으로
쓰인다.

어원과 달리 잘못 쓰는 용어중 하나다. 어쨌거나 이 방법은 피임 실패율이 너무 높아 바람직한 피임법은 아니다.

오늘날 가장 보편화되어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 콘돔이다.

이른바 "꽃신"이다. 이 혁신적인 발명품의 원래 목적은 피임이 아니라 성병 예방이었다.

1564년 이탈리아의 해부학자 팔로피오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음경에 린넨
으로 만든 덮개를 씌우고 성교를 하면 성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서술돼 있다.

그후 18세기초 영국에서 출간된 책에서 콘돔이 피임을 목적으로 사용된
기록이 나온다.

콘돔은 저렴하고 효과가 우수한 피임 도구다.

하지만 사용상의 번거로움과 성감을 방해한다는 핑계 때문에 이것을 기피
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래서 의학자들은 간편한 남성용 피임 수단을 개발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불임이 아니라 피임이어야 한다는 것.

즉 그 효과가 개개인이 원하는 만큼 일시적이어야 하고 출산을 원할 때는
쉽게 가임 능력이 복구될 수 있어야 한다.

의학적인 면에서 보자면 남성의 정자생산 기능은 일시휴업보다는 차라리
"폐업"이 쉽다.

그래서 먹는 피임약에서 피하에 매몰시키는 피임약까지 다양한 방법이
시도됐다.

때로는 기대할 만한 비전이 제시되기도 했다.

지난 97년에도 세계 최초로 남성용 먹는 피임약이 생산될 전망이라고 했지만
끝내 뒷소식이 들려오지 않는다.

당시 브라질의 한 제약 회사는 하루 한알씩 40일을 복용하면 정자 생산이
중단되며 복용을 끊으면 20~40일 뒤에 정자 생산이 재개되는 먹는 남성 피임
약을 발표한 바 있다.

최근 외국의 유명 과학잡지에서도 남성용 피임약 개발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발표가 있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교미능력이나 정자의 건강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도 암컷을 임신시킬 확률이 90%나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혹시..." 하고 바랐던 이런 얘기들이 종종 "역시..."로 끝난
사례가 많아 당장 호들갑을 떨기엔 무리지만 새천년이 밝았으니 이번에는
정말 기대해 본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