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벤처] (신동욱의 '경영노트') ''21세기의 피라미드..'

[ ''21세기의 피라미드'' AOL ]

인류 최대 불가사의로 흔히 이집트 피라미드가 꼽힌다. 먹고살기조차 힘들었을 그 옛날, 인간 생활에 별 보탬이 안되는 무덤
만드는데 그 많은 노력을 쏟아부은 것이 너무나 놀랍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필경 강제 노역보다는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뭔가에 단단히 홀려 광신도처럼 나선 덕분이었을 것이다. 최근 타임워너그룹을 인수하기로 해 세상을 놀라게 한 인터넷 접속서비스
업체 아메리카 온라인(AOL)도 이런 피라미드가 아닌가 한다.

그 자신 창출하는 실용가치가 별 것 없는데도 거대한 실체를 빚어냈기 때문
이다.

주식투자자들이 뭔가에 홀린듯 인터넷사업을 숭배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구조물이다. AOL은 하와이섬에서 태어나 윌리엄스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78학번 스테픈
M 케이스가 세운 회사다.

그는 졸업 후 뉴욕의 J 월터 톰슨사 광고직 사원 모집에 응시했다가
떨어지고 피자헛과 프록터 앤드 갬블 등의 브랜드 매니저로 전전했다.

그러다 샐러리맨 생활을 3년만에 그만두고 1983년 컨트롤 비디오라는
비디오게임기 생산 벤처기업에 합류했다. 그러나 12만여대 생산품 가운데 고작 2천여대를 판 컨트롤 비디오는 형편
없이 실패했고, 이에 케이스는 퀀텀컴퓨터라는 온라인 서비스 대행업체를
차려 코모도어와 애플 등으로부터 일감을 따내 그럭저럭 꾸려갔다.

하지만 애플과 갈등을 빚고 1985년 간판을 바꿔 달았으니, 이것이 바로
아메리카 온라인이다.

"사이버계의 바퀴벌레"라는 혹평을 들으면서도 1992년 주식공모를 성공적
으로 치른 AOL은 1996년 기업의 운명을 바꿔 놓는 행운을 맞았다.

현 사장인 로버트 피트만을 사장으로 영입한 것이다.

당시 42세였던 피트만은 이미 23세 때부터 인정받은 경영의 귀재다.

뉴욕 NBC라디오 편성부장 당시 NBC라디오를 전국 1위로 올려 놓았고
워너사에서는 음악전문 케이블방송사, MTV를 출범시켰다.

MCA에서는 첨단 온라인 미디어 벤처기업 인수 책임자로 활약했고 타임워너
그룹에선 대형 테마파크 인수 및 경영을 맡아 했다.

AOL로 옮기기 직전엔 젊은 나이에 미국 최대 부동산회사중 하나인 센트리21
사장에 임용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피트만은 한마디로 첨단 미디어와 구식 미디어, 추상세계와 실물세계를
모두 섭렵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케이스 회장의 제갈량이 됐다.

기대대로 피트만이 사장이 된 후 AOL은 즉각 날기 시작, 그야말로 무섭게
성장했다.

현재 1천6백억달러를 넘는 회사가치도 사실상 이 기간에 생겨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AOL의 미래는 피라미드 완공 직전의 이 순간, 더 불안하게만
느껴진다.

시장의 맹목적 신념과 환상이 이로써 깨지고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인터넷
환영들을 몽땅 부둥켜안고 추락할 것 같다.

AOL의 성공비결이란 것이 딱히 없기 때문이다.

게으른 네티즌들에게 인터넷을 TV처럼 쉽게 쓸 수 있게 한 포장술이 고작
이다.

콘텐츠며 전송망은 사실상 전부 남의 것이다.

얼마간의 프로그래밍 기술도 특출난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쉽게 모방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매우 낮은 사업분야의 기업이다.

고객들도 언제든 클릭 한 번에 접속선을 바꿀 수 있다.

AOL은 다만 남보다 한발 빨랐을 뿐이다.

케이스 회장은 온갖 남의 것만 비추는 거울에 현혹돼 거울 아닌 거울 속
물건값을 몽땅 치른 투자자의 환상이 깨지기 전에 잽싸게 물건을 들여놓고자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정작 물건 값을 치러야 할 1년 정도 후에도 과연 부풀려진 거울
값이 현 수준에서 가만 있어 줄지 심히 의심스럽다.

피트만 사장은 곧 은퇴할 예정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