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개원 30주년 맞는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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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영훈 원장 약력 ]
고려대 상과대학
서울대 상과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
서독 에르랑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서독 에르랑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중앙대 경상대학 교수, 상공부장관,
경제 고문
대통령 경제고문
제9대.10대 국회의원
1980년~현재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주요저서 =공업화 과정의이론.우리나라 중화학공업정책 등------------------------------------------------------------------------
"이념이 없는 경제학은 지식인의 무덤입니다"
오는 2월2일 개원 30주년을 맞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의 백영훈 원장은
막스 베버의 경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국인 첫 독일대학 경제학 박사(1958)인 그는 박정희 대통령 경제고문
(1964), 제9대, 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백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무너져 국가의 중심세력이 없어졌고
경제철학마저 실종된 상태"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외환위기의 깊은 터널에서 힘겹게 바둥거리는 서민에 대한 연민과 미국식
시장주의의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부유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되는 표정이었다. 백 원장은 곧 "한국 자본주의 제3의 혁명"이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학자답게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이 중기적으로 모델화해야
할 경제상을 독일 "오르도 학파"에서 찾는다.
시민이 기업의 실질적인 주주가 되는 시민참여 시장주의와 노사동등의
원칙에 입각한 공동체주의가 그가 주창하는 "신산업주의"의 요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금융 구조조정이 추진돼 왔지만 결국 그 과실은
재벌들에게 되돌아갔다"며 "이는 경제정책이 원칙과 철학없이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 변질, 또는 왜곡돼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궁극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는 경제의 중심세력이어야 할 중산층을 복원시키는 일이 한국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민간연구소로서는 가장 역사가 긴 30년동안 KID는 1천2백50건의 연구
용역을 수행해 왔다.
그 중엔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구미
창원 여천 등지의 공업단지 조성에 대한 타당성 검토도 포함돼 있다.
백 원장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영연수원에서 지난 20년간 총 60만명의
기업체 간부를 대상으로 경영교육을 해 왔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백 원장은 개원 30주년을 맞아 "KID 캐피탈"이라는 일종의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백억원의 자본금으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영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외국인 주식투자나 외자유치 등이 긍정적 면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투자회사 설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964년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을 수행했을 때 얼굴과 작업복이
숯투성이인 채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목청껏 불렀던 서독 파견 광원들과
간호원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돌아오는 아우토반에서 뿌린 눈물과 함께...
당시의 열정과 의지를 국민들이 되찾았으면 하는 것이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남긴 소망이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9일자 ).
고려대 상과대학
서울대 상과대학 대학원 경제학 석사
서독 에르랑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서독 에르랑겐 대학원 경제학 박사, 중앙대 경상대학 교수, 상공부장관,
경제 고문
대통령 경제고문
제9대.10대 국회의원
1980년~현재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주요저서 =공업화 과정의이론.우리나라 중화학공업정책 등------------------------------------------------------------------------
"이념이 없는 경제학은 지식인의 무덤입니다"
오는 2월2일 개원 30주년을 맞는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의 백영훈 원장은
막스 베버의 경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국인 첫 독일대학 경제학 박사(1958)인 그는 박정희 대통령 경제고문
(1964), 제9대, 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백 원장은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이 무너져 국가의 중심세력이 없어졌고
경제철학마저 실종된 상태"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외환위기의 깊은 터널에서 힘겹게 바둥거리는 서민에 대한 연민과 미국식
시장주의의 거센 물결에 이리저리 부유하는 경제정책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되는 표정이었다. 백 원장은 곧 "한국 자본주의 제3의 혁명"이라는 책을 낼 예정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학자답게 이 책에서 그는 한국이 중기적으로 모델화해야
할 경제상을 독일 "오르도 학파"에서 찾는다.
시민이 기업의 실질적인 주주가 되는 시민참여 시장주의와 노사동등의
원칙에 입각한 공동체주의가 그가 주창하는 "신산업주의"의 요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금융 구조조정이 추진돼 왔지만 결국 그 과실은
재벌들에게 되돌아갔다"며 "이는 경제정책이 원칙과 철학없이 그때 그때
사정에 따라 변질, 또는 왜곡돼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경제학과 경제정책의 궁극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는 경제의 중심세력이어야 할 중산층을 복원시키는 일이 한국이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한다.
민간연구소로서는 가장 역사가 긴 30년동안 KID는 1천2백50건의 연구
용역을 수행해 왔다.
그 중엔 독일의 아우토반에서 힌트를 얻었다는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구미
창원 여천 등지의 공업단지 조성에 대한 타당성 검토도 포함돼 있다.
백 원장은 경기도 용인에 있는 경영연수원에서 지난 20년간 총 60만명의
기업체 간부를 대상으로 경영교육을 해 왔다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백 원장은 개원 30주년을 맞아 "KID 캐피탈"이라는 일종의 벤처투자회사를
설립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1백억원의 자본금으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경영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외국인 주식투자나 외자유치 등이 긍정적 면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동안 쌓아온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투자회사 설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1964년 박 대통령의 서독 방문을 수행했을 때 얼굴과 작업복이
숯투성이인 채 "동해물과 백두산이..."를 목청껏 불렀던 서독 파견 광원들과
간호원들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돌아오는 아우토반에서 뿌린 눈물과 함께...
당시의 열정과 의지를 국민들이 되찾았으면 하는 것이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남긴 소망이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