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9일자) 행정편의적 세제는 문제지만

법인에 대한 특별부가세(양도소득세) 과세요건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포괄적으로 위임한 97년 법인세법 59조의2 제1항(99년 법인세법 99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결정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특히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의 이같은 헌법불합치결정 과정에서 일부
재판관들이 헌법불합치가 아니라 위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특히 그러하다. 문제의 세법조항이 위헌이라는 헌재의 견해는 엄격한 조세법률주의에 입각,
과세요건과 기준을 대통령령이 아니라 법률로 열거하라는 사법부의 오랜
주장을 거듭 분명히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죄형법정주의와 함께 조세법률주의가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점을 되새길
때 이같은 헌법재판소의 시각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옳다.

행정편의적 조세행정으로 인한 억울한 세금을 없애야한다는 시각에서 보면
헌재결정에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급변하는 경제현실을 감안하면 얘기는 다소 달라질 수도 있다.

과세요건을 법률에 구체적으로 정해야한다는 열거주의원칙을 지나치게
엄격히 적용하면 결과적으로 탈세를 조장하는 꼴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금융기법이 잇달아 개발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상장을 앞두고 대량의 주식인수권부사채(BW)나 전환사채(CB)등을 발행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결과적으로 엄청난 재산을 변칙상속시켰으나 세금을 단
한푼도 물리지 못한 사례가 빚어진 것도 그런 맥락에서 되새길 필요가 있다.

금융기법의 변화에 일일이 법개정으로 대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일본 등에서도 최근 들어서는 상속.증여를 비롯한 자산관련세제를 중심으로
포괄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라고 볼 수 있다. 법에서는 포괄적인 과세근거만 명확히 규정하고 구체적인 과세요건은
시행령으로 넘기는 방식을 통해 세제의 현실대응능력을 높여야 한다는
세제 당국자들의 주장도 그 나름대로 경청할 가치가 충분하다.

문제가 된 99년 법인세법 99조는 대통령령으로 정했던 과세표준을 법으로
바꾸는 형태로 지난 1월14일 국회를 통과, 곧 공포될 예정이기 때문에
헌재의 헌법불합치결정 및 적용중지명령이 내렸지만 세정상 과세공백이
빚어지는 일은 실제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세제당국과 법원간 견해차로 인해 빚어질 수 있는 부작용의 소지는
이 조항외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세제당국이 조세법률주의에 좀더 충실해야할 것이라고
보지만, 법원도 조세현실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할 일면이 없지않다고
생각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2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