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액 연봉 외국인 행장 .. 김중웅 <현대경제연 원장>

우리나라에도 고액 연봉을 받는 전문경영인(CEO)시대가 열리는가.

외국자본에 매각된 제일은행이 30억원이 넘는 고액 연봉의 외국인 행장을
선임하였다는 보도는 일반 봉급자들에게 큰 놀라움을 주고 있다. 그 연봉 금액이 일반 금융인의 보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천문학적
숫자라는 데서 오는 충격과 본인 능력에 따라서는 누구나 응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일 지 모르겠다.

일부 은행에서 스톡옵션 제도를 이미 도입하고 있지만 이 경우는 엄격히
말해 능력에 따른 성과급이라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이후 은행의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은
전문경영인의 혁신적인 경영성과라기보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한 결과라는
성격이 짙고 게다가 당시는 주식시장이 붕괴되어 금융기관의 주가가 바닥권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제일은행의 최고경영인 영입은 진정한 전문경영인 시대의
도래라는 금융자유화의 발전적 의의를 갖는다.

이를 계기로 보수적 성격이 강한 우리 금융계에도 엄청난 변화가 예견된다.

우선 제일은행의 외국인 행장 선임이 가져다 줄 긍정적인 변화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경영자의 영입으로 제일은행이 선진 금융 기법의 도입과 경영
혁신을 서두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는 국내 은행들도 앞다투어 선진 기법을 도입하지
않으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고 지금까지의 금융 관행과 사고의
틀에 일대 혁신이 초래될 것이 자명하다.

특히 정책 당국의 일방적 지시에 대해 "노(NO)"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은행이
생겨난 만큼 관치금융 행태의 여지가 줄고 명실상부하게 금융부문의 자유화가
확산될 것이 기대된다.

이처럼 세계적인 금융전문가의 국내 진출과 뉴브리지캐피탈같은 외국자본의
신용을 바탕으로 제일은행을 비롯한 국내 금융기관의 국제신인도도 크게
제고될 것이다. 앞으로 동북아시아가 세계경제의 역동적인 성장 지역으로 부상될 전망인데
외국은행의 한국 진출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서울을 국제금융센타의 하나로
육성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 금융기관의 종사자들에게도 교훈을 주고 있다.

최고경영자가 되려면 국적이나 연공서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세계 수준의
전문 지식과 경영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고액 연봉의 외국 경영자 채용은 이와 같은 긍정적인 뜻에 못지 않게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국내 은행장이나 임원들의 보수가 외국인 경영자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을 감안할 때 최고경영자의 고액 연봉제가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의 경우에는 아직 높은 보수만큼 경영 성과를 올리고
책임지는 책임경영체제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자칫 보수 수준의 인플레만 초래하게 될 우려가 없지 않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최고전문경영인과 평사원간 임금 격차가 다른 나라에
비해 너무나 작은 사실을 생각하면, 전문경영인의 보수 수준을 높여 이들의
의욕적인 경영 활동을 유도할 필요가 크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되고 경영 결과에 대해서는
철저히 책임지는 여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또 기밀비와 같은 음성적인 성격의 소득은 최소화하거나 전체 연봉에
포함시켜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

가장 우려되는 문제점은 우리의 기업 문화가 외국 경영인의 가치관과
다름으로 인해 조직의 혁신이 지연되고 혁신적인 경영 방침이 조직의
하부로 전달되지 않는 역기능이 나타날 가능성이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능력 위주의 성과주의는 잘못되면 조직구성원간의
이기적 갈등으로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저하시킬 염려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액 연봉의 외국인 경영자는 자신의 전문 지식과 세계
시장에서의 경험을 기업 경영에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의 토착 기업
문화와 융합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국경없는 세계화시대에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체제의 확산은
시대의 큰 흐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세계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면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의 서구 가치관에 우리의 가치 규범을 동화시켜야 한다.

그러나 기업의 경쟁력은 기본적으로 시스템의 효율성 문제이므로 선진
금융자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개인 능력 중심의
서구적 가치 기준에 조직의 인화라는 동양적 가치관을 접목시켜 조직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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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약력 =서울대 법대
미국 클라크대 경제학 박사
한국신용정보 사장
저서:한국의 금융정책, 세계화와 신인본주의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1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