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노코리아 2000] 제2부 : (6) '기업을 산학연 중심으로'

미국의 대학기술관리자협회(AUTM).

각 대학의 기술이전사무소 책임자들이 모인 단체다. 대부분 민간기업 임직원 출신인 이들은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기업들에
파는 것이 주 임무.

자기 대학에서 개발한 기술을 평가하고 특허를 출원하는일도 맡는다.

이런 기술이전사무소를 갖고 있는 미국 대학은 약 2백40여개교에 달한다. 독일에도 1백97개 대학에 기술이전센터가 있다.

이들 역시 대학의 기술관련 정보와 인력을 기업에 넘겨 주는 역할을 한다.

교수들의 신기술 창업을 지원하고 연구원을 훈련시키는 것도 기술이전센터의
몫이다. 기술 선진국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산.학.연 사이에 튼튼한 기술이전
파이프라인이 깔려 있다는 점.

산.학.연 협력을 기술혁신 시스템의 요체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평가한 한국의 산.학.연 협력 수준은 세계
23위에 그친다.

산.학.연 협력이 겉돌고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여년간 그 중요성은 강조됐지만 산.학.연 협력의 성과는 미흡하다.

성공사례를 들라면 지난 1990년대 초반의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와 TDX
(전전자교환기) 기술개발 정도가 고작이다.

그 이후엔 내놓고 자랑할 만한 성과 자체가 없다.

산.학.연이 강조돼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국내 박사급 고급기술 인력 10명중 9명은 대학과 출연연구소에 있다.

그러나 기술개발투자비의 75%는 기업이 담당한다.

이같은 사람과 돈의 비대칭을 조화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산.학.연 협력
이다.

결국 기술전쟁의 첨병인 기업을 대학과 출연연구소가 후방에서 얼마나
뒷받침해 주느냐가 기술혁신 성공의 관건이기도 하다.

선진국들이 산.학.연에 온갖 제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도 이 때문
이다.

한국의 산.학.연이 세개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세 주체간 신뢰부터 쌓는게 시급하다는게 중론이다.

현재 산.학.연 협력이 제대로 안되는 이유로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신뢰 부족이다.

"서로 믿질 못한다. 교수들이 기업을 찾아가면 "대학교수들이 알면 뭘
알겠느냐"는 식이다. 교수들은 기업에선 돈 되는 연구만 하려 한다며 함께
일하려 들질 않는다. 정부출연연구소에 대한 불신은 기업과 대학 양쪽에서
너무도 깊다"(주승기 서울대 공대교수)

그러다보니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산.학.연이 공동연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서로 과제를 쪼개 분산연구를 하는게 대부분이다.

과제를 마칠 때까지 회의 한번 제대로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선 산.학.연 공동연구 이전에 정보교류 활성화가 전제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 대학 연구소가 참여하는 작은 연구회들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산.학.연이 끈끈하게 맺어진 연유를 찾아보면 그 뿌리엔 수많은
연구회들이 있다. 연구회를 통해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간의
믿음은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이다"(김갑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산.학.연 사이의 인력교류를 늘리자는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대학교수가 기업의 연구책임자로 가고, 기업연구소 연구원이 대학교수가
되는 인적교류가 활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교수나 연구소의 연구원이 기업에 나갔다 돌아올 경우 승진이나 보수
등에서 불이익을 없애야 한다. 대학교수나 연구원을 뽑을 때 기업경력을
연구경력과 대등한 수준으로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교수들을 평가할 때
아예 산.학.연 협동연구실적을 반영하는 것도 방법이다"(김종갑 산업자원부
산업기술국장)

정책적 뒷받침도 긴요하다.

산.학.연 협동연구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자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대학이나 출연연구소가 개발한 기술을 사업화한 경우 기술료
수입의 일정비율 이상을 연구자에게 배정토록 한 것과 같은 유인책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대학과 연구소 연구원들의 자기 성취도를 높여 산.학.연 협력의 동기를
유발하자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996년 "협동연구개발촉진법"이란걸 제정했다.

산.학.연 협력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부(특정연구개발사업) 산업자원부(산업기반기술개발사업)
정보통신부(정보통신기술개발사업) 중소기업청(산.학.연 컨소시엄 기술개발
사업) 등은 나름대로 산.학.연 협력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한해에만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한다.

이젠 산.학.연 협력이란 명목 아래 돈만 쏟아부을게 아니다.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가 나오도록 유도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기업 대학 출연연구소야말로 한국을 기술강국으로 이끌 삼두마차이기 때문
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2000년 2월 8일자 ).